안녕하세요. 김만영입니다. 광고 디자인, CD-Rom 타이틀 디자인, 각종 삽화, 웹 디자인 등을 했고, 지금은 주로 플래시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 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을 시작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광고대행업체에 바로 취업했는데요. 1995년 9월에 시작했으니 지금 18년 차 되는군요.
군 제대를 하자마자 취업에 성공하셨다면, 군 생활을 하실 때 취업 준비를 하셨던 건가요?
취업 준비를 따로 했다기 보다는 군대에 있을 때의 인연이 이어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군대에서 제대할 때 '추억록’이라는 것을 만들어요. ‘추억록’에 삽화가 들어가기도 하는데, 제가 선임병의 ‘추억록’에 들어가는 삽화 작업을 몇 번 해준 적이 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신나게 작업했었습니다. 제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임한테 연락이 온 거에요. ‘아버지께서 광고 기획사를 운영하시는데 디자이너가 갑자기 퇴사하게 됐어. 혹시 와서 도와줄 수 있니?’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공부해본 적도 없고 사전 지식도 너무 없어서 거절했는데, ‘괜찮아.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실 거야. 와서 배우면서 일하면 되지. 손재주 좋은 건 아버지도 인정 하셨어.’ 라는 답변에 용기를 내서 입사를 결정했습니다. 입사하고 서울신문 디자이너 출신이셨던 사장님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계기로 광고 디자인에 첫발을 내딛게 되신 거군요! 지금이야 거의 모든 디자인이 컴퓨터로 이루어지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을 것 같아요.
네, 당시 맥킨토시가 있긴 했지만 지금 같은 작업환경은 아니었어요. 작업속도도 지금처럼 빠르지 않았고, 매킨토시에 익숙한 인력도 부족했어요. 요즘은 오히려 그래픽 툴에 익숙해진 나머지 수작업 할 기회가 없어 그림 실력이 이전에 비하면 형편없어지기도 했는데요. 그때는 사장님께서도 수작업 디자이너셨고 저 또한 주로 수작업으로 진행했었어요.
수작업과 컴퓨터 작업을 모두 해보셨는데 서로 어떤 차이가 있나요?
우선 두 작업의 공통점은 의뢰가 들어오면 넣고자 하는 사진이나 삽화, 원고를 접수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원고를 분석해서 헤드카피, 서브카피를 뽑고 주요내용과 부가설명, 연락처 등으로 정리해서 구분해요. 사진은 사진 자료집에서 뽑거나 스튜디오에 의뢰하고, 삽화는 직접 작업했어요. 여기까지는 두 작업이 비슷한데, 이후 작업부터 과정이 달라지겠네요. 수작업은 화판에 전체적으로 레이아웃을 잡고 각 카피 별 급수(컴퓨터에선 포인트), 자간, 행간, 장평을 정해서 전산실 또는 식자파트에 넘겨요. 그러면 인화지로 뽑아서 디자이너에게 다시 전달되고, 3M 같은 스프레이 접착제를 이용해서 화판에 자리를 잡습니다. 사진이나 삽화는 원본은 촬영실에 넘기고, 복사기로 확대/축소해서 화판에 자리만 잡아요. 이후 팩스를 통해 의뢰인 컨펌을 받아요. 몇 번의 피드백을 거쳐서 확정이 되면, 화판 위에 트레팔지 같은 반투명 용지를 붙여서 카피, 배경 등에 CMYK(Cyan, Magenta, Yellow, black)별 칼라(ex. C20, M50)를 지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촬영실로 화판을 넘기면 CMYK 분판 과정을 거쳐 최종 분판 필름이 나와요. 좀 복잡하죠? 반면 컴퓨터 작업은 아주 간단합니다. QuarkXPress, Corel Draw, InDesign, PageMaker 같은 편집용 프로그램에서 레이아웃을 잡아요. 사진이나 삽화는 스캔작업으로 문서에 삽입하고요. 일반 프린터로 출력해서 컨펌 및 피드백 과정 후 필름 출력기 또는 출력센터를 이용해서 출력합니다.
수작업이 컴퓨터 작업보다 신경 쓸 부분이 더 많군요. 그럼 그 두 작업 간의 장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전반적인 느낌은 수작업은 여러 사람이 각 분야별로 협력해서 업무를 진행하니 자연스레 인간관계가 이루어져서 따뜻한 느낌이었다면, 컴퓨터 작업은 한 명이 모든 과정을 처리하니 시간에 쫓기면서 작업하는 모양새가 결과물을 뽑아내는 컴퓨터의 일부분이 된듯하다는 건데요.
장단점을 말씀 드리면, 수작업은 적은 제작 비용과 레이아웃이 오밀조밀해 탄탄한 느낌을 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컴퓨터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의 성능이 떨어져서 전반적으로 좀 엉성하고 뭔가 모자란 느낌이었거든요. 단점은 복잡하고 여러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점이고요.
컴퓨터 작업의 장점은 수작업과 반대로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끝낼 수 있다는 것과 결과물이 직관적이라는 점입니다. 그 당시 전산실에 디자이너와 포토그래퍼가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작업을 디자이너가 하고 있으니 더 간단해졌다고 할 수 하지만 당시엔 화면과 출력물의 차이가 많이 나고 프린트 출력물과 필름출력물마저도 차이가 많이 나서 재출력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과 전산장비가 워낙 고가여서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비용 등의 여러 면에서 이런 점들이 개선되었습니다.
아무튼 당시 광고회사에서 틈틈이 어깨너머로 전산실 작업을 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QuarkXpress, Photoshop, Illustrator를 다루는 법을 조금씩 알아갔어요.
그리고 일하면서 1년간 조금씩 모은 거금 300만원을 들고 용산에 갔어요. 매킨토시는 아니었지만 PC를 구입했죠.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기 위해 PC를 구입하게 되신 건가요?
네, 컴퓨터 그래픽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활용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여러 종류의 컴퓨터를 다루는 출력센터에서 출력요원으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일을 하면서 컴퓨터 툴에 익숙해졌을 때쯤 홍대생이나 많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면서 그림에 대한 갈증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때마침 전자신문의 필름 출력을 하면서 Macromedia 플래시 2.0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애니메이션을 쉽게 제작하는 툴이라는 부분이 호기심과 열정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그 기사를 본 다음날 바로 서점에서 그에 관련된 서적을 구입하고 동봉된 CD-Rom에서 시험판을 설치했습니다. 플래시라는 툴을 처음 접한 날, 매우 놀라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Photoshop 과 Illustrator의 장점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때 그림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생기면서 CD-Rom 타이틀 제작 업체로 이직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경영악화로 퇴사한 후 프리랜서를 하면서 광고디자인, 게임디자인, 캐릭터 디자인, 애니메이션, 삽화 등의 업무를 주로 했고, 현재까지 오게 됐습니다.
각종 디자인부터 지금의 애니메이션 제작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해당 업무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동기나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직업을 가질 줄은 몰랐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계속 즐기다 보니 어느덧 이 일을 하고 있는데요.
학창시절 때 반에 이런 친구 한두 명은 있었을 거에요. 수업시간에 수업은 안 듣고, 교과서나 공책에 열심히 작품 활동하는 친구요. (웃음) 제가 그런 애였어요. 더 어렸을 때 얘기를 하면… 보통 글자부터 배우고 초등학교에 입학하잖아요. 저는 아니었어요. 글자보다 길창덕 선생님의 ‘꺼벙이’를 먼저 따라 그렸어요. 그러면서 그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하시고 있는 업무를 자연스럽게 이어오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이 분야로 진출하기 위해서 멘토님께서는 어떤 능력이나 스킬을 준비하셨나요?
사실 첫 직장을 다니기 전까지는 이런 디자인 업무는 대학에서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만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능력을 키워야 할지 어떻게 스킬을 연마해야 할지도 몰랐어요. 취미 생활로 즐겼습니다. 게임을 많이 하고, 만화도 많이 보면서 애니메이션을 즐겼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업무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툴을 배우고 싶었던 것도 더 진출하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단순하게 좋아서 한 거였거든요. 광고 디자인을 할 때도 가능하면 일러스트를 많이 삽입했어요. CD-Rom 디자인, 웹 디자인을 할 때도 캐릭터나 일러스트를 많이 넣어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툴을 만졌는데요. 그러면서 지금의 직업군으로 오게 된듯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준비를 했다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니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아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었지만, 연습장에 끊임없이 그림을 채워갔었거든요.
현재의 업무를 하시기 전에 생각하셨던 것과 실제 업무가 같나요? 이상과 현실 이런 게 달랐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플래시 1세대이기 때문에 플래시 콘텐츠가 많지 않았어요. 엽기토끼 ‘마시마로’가 나와서 붐을 이루기 한참 전에 이미 플래시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업계 자체가 시작이라 아는 것도 알 수 있는 것도 없었어요.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상은 있었지요. ‘똘이장군’, ‘마크로스’ 같은 만화영화를 좋아했고 그리고 싶었으니까요. 군입대전에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 지인을 통해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스튜디오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한편의 애니메이션이 나오기 위해서 엄청난 인력과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많이 놀랐죠. 제가 갔던 스튜디오는 원화작가, 동화작가, 배경부, 채색부, 촬영실 등 각 부서별로 십 여명으로 이루어져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공장을 연상케 했습니다. 실장님과 면접을 보는데 동화부나 촬영부을 추천하고 동화부의 경우 장당 얼마라는 얘기를 듣고 사실상 애니메이터에 대한 환상은 일찌감치 깨져버렸습니다. 그 금액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너무 짜다고 느꼈었거든요. 이 외에는 차이점을 느꼈다고 할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 일을 하는 게 정말 즐거웠거든요. 지금도 그렇고요.
지금까지 삼성화재 사내 방송용 애니메이션, 에듀엔조이의 학습게임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오셨는데요. 작업을 하실 때 의뢰 초반부터 진행되어가는 프로세스를 알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의 경우, 시나리오가 나오면 캐릭터 디자인, 콘티 제작, 배경 디자인, 원화, 동화, 채색, 연출 및 애니메이션, 편집 및 특수효과 등의 순서를 밟습니다. 하지만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대부분의 단계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렴한 가격으로 거래되었던 이러닝 콘텐츠의 역사로 인해 저가(低價) 애니메이션이라는 인식이 강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단가에 맞추다 보니 현실적으로 꼼꼼하게 모든 단계를 거치는 것은 힘들 때가 많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을 간단하게 알려드리면, 우선 시나리오가 넘어오면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견적과 작업기간, 단가 협의를 합니다. 그 다음에 등장인물, 배경 한 컷 정도를 컨펌하면 바로 씬에 배경과 캐릭터를 삽입하고 키프레임을 넣어서 애니메이션 제작에 들어갑니다.
애니메이션의 제작 과정은 생각보다 정교하군요. 지금 하고 계신 게임디자인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게임디자인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데요. 역시 마찬가지로 여러 지시사항이나 대략적인 레이아웃 등이 정의되어있는 스토리보드를 기준으로 단가와 기간 등의 협의가 진행됩니다. 구성은 대략적으로 인트로, 메인화면, 게임화면, 결과, 엔딩으로 이루어지는데요. 등장인물과 메인 디자인 컨펌 후에는 액션스크립터와 각 오브젝트 별 제작 상의 특이사항에 대해 상의합니다. 인트로 등 각 화면의 디자인, 등장인물의 동작, 기타 오브젝트 디자인, 엔딩까지 작업이 완료되면 액션스크립터한테 넘기게 되고 대략적인 버그 테스트 후 의뢰인에게 전달됩니다. 전달된 뒤에는 1,2차례에 걸쳐 피드백을 주고 받고 완료하게 됩니다.
그런 작업을 하심에 있어 멘토님만의 원칙이나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사전 협의를 꼼꼼하게 하는 편입니다. 시나리오나 콘티에서 표현이 애매한 부분을 정리하고 연출이 까다롭다던가 액팅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 먼저 협의를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수정이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 이해시키는 겁니다. 물론 셀 애니메이션보다는 수정이 용이하지만 간단한 것들이 아닌 씬 전체에 대한 수정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 미리 방지하는 것이지요.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 클라이언트와 대화하면서 협의했던 게 도움이 되는 듯 하네요.
셀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중에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하시는 건 그만한 매력이 있어서 일 것 같은데요.
애니메이션을 웹 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장점일 것 같고요. 프로그램 측면에서는 프로그램 자체가 가볍다는 점, 일러스트와 포토샵의 장점을 섞어 놓은 듯이 드로잉, 채색, 편집이 편하다는 점, Tween으로 동작표현이 쉽다는 점, 심볼을 이용한 수정이 용이하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결과물이 빨리 나온다는 것이 플래시 애니메이션의 가장 큰 매력이겠죠.
작업을 하심에 있어 현재 트렌드가 무엇인지 아는 것도 중요할 것 같은데요.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3D 애니메이션의 발전으로 2D 애니메이션은 몇 년째 기술적인 부분의 변화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특한 세계관이나 캐릭터, 시나리오는 모든 콘텐츠의 트렌드이니 딱히 접목 대상이라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하고 계시는 일을 보다 더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있으신가요?
다양한 그림체를 개발해서 클라이언트에게 효과적으로 어필하고 싶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삽화체나 만화체 모두 가능했는데 지금은 만화체에만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아서요.
그 외에 다른 쪽으로는 의뢰 작업에만 치중하지 않고, 자체 콘텐츠를 개발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업무를 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거의 대부분이 혼자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의뢰인과의 신뢰도 문제로 힘들 때가 있습니다. 간혹 약속한 결제일이나 결제금을 안 지키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단순히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서 한번 신뢰가 깨지게 되면 의뢰인은 미안해서 더 이상 의뢰를 안하고, 저는 의뢰 받는 것이 고민됩니다. 하지만 다시 연락을 주셔서 좋은 거래처로 남은 경우도 있고, 담당자가 이직해서 연락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끝까지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회사에 속해 있지 않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느끼시는 어려움이 있으실 것 같아요.
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면 단가 산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의뢰를 하실 때 조금 더 저렴하게 요구를 하시기 때문에 단가에 맞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무척 어려울 겁니다.
이때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본인의 단가에 맞는 작업을 선택해서 하는 방법이고 둘째는 단가에 맞추어 작업물의 퀄리티를 조정하는 방법입니다.
일거리가 많을 때는 단가에 맞는 작업을 선택했지만 요즘같이 불경기일 때는 후자의 방법으로 작업물을 산출해야 할 겁니다. 제 개인적인 노하우를 알려드리자면, 저는 마지막 직장에서 받은 연봉을 기준으로 측정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직장을 다닌 지 오래되신 분이거나 연봉 측정을 받아본 적이 없는 분이라면, 먼저 자신의 객관적인 값어치를 측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직장을 다닌 지 오래되신 분은 이미 고수의 경지에 오르셨을 테니 본인만의 노하우대로 진행하면 되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은 일부러 면접을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어느 방법을 통해서든 자신의 값어치를 측정한 뒤 월, 주, 시간단위로 단가를 산정해서 작업시간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시면 됩니다.
경력이 쌓이면서 작업속도가 빨라지면 퀄리티를 높여서 자신의 값어치를 높일 수 있다는 거 아시죠? 시간은 돈이니까요. (웃음)
지금까지 일 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선관위 홍보물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작품 특성 때문인지 협의한 사항 외의 것들이 계속해서 요구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A라는 애니메이터 분이 중재 역할을 했었는데, A님이 직접 수정하기도 하면서 어렵게 납품 완료했던 기억이 있네요. 나중에 조카들이 TV에서 보고 전화해서 ‘이모부, 우와 짱이에요.’라고 했을 때 힘들게 작업한 만큼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뿌듯한 만큼 보람도 느끼셨겠어요. 업무를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최근 초등학교 콘텐츠를 작업중인 데 우리 아이가 제가 작업하는 것을 보고, ‘어! 이거 아빠가 만든 거였어?’라고 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습니다.
전부터 제가 그림 그리는걸 보면서 좋아하긴 했지만 반 친구들 앞에서 아빠가 자랑스러웠던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에게 큰 힘이 됐고, 그래서 그 의뢰처와 몇 년째 계속 거래 중입니다. 이러닝 콘텐츠는 여러 사람한테 긍정적인 정보와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거든요.
요즘은 카툰을 준비 중인데 캐릭터 설정이나 시나리오를 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인데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을 하고 다닙니다. (웃음)
그런 말 한마디는 큰 힘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멘토님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캐릭터, 배경, 액팅, 연출 등을 전부 혼자 하다 보면, 다른 직업군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다중이가 되는 거라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등장인물이 5명이라면 5명의 연기를 해요. 거울을 보면서 더빙에 맞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 캐릭터에 맞는 걸음걸이로 걸어보기도 해요. 선생님이 됐다가 학생이 되고, 도둑이 됐다가 아가씨가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매력일까요?
그렇기도 하지만, 그리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 원동력 중 하나입니다. 플래시 서적을 구입해서 대략적인 사용법을 배우고 첫 미션으로 닭이 걸어가는 작업을 했었는데, ‘오오옷!!! 이거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어요. CD-Rom 타이틀 제작사에 다닐 때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는데, 두 달 동안 일주일에 한번 집에 갈 정도로 야근을 하면서도 마냥 즐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면서 느끼는 설렘과 그 캐릭터들이 움직이는 것이 주는 재미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몸담고 계신 분야의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스티브 잡스의 플래시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 이후로 툴을 이용하는 지인들 대부분이 밝은 전망을 하지 않더군요. 실제로 그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나오던 플래시 콘텐츠가 많이 주춤하고, 의뢰도 많이 줄었습니다. 경기침체와 정부의 IT 지원 축소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지금 상황에서는 향후 몇 년간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없어질까요? 전망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림 그리시는 분들, 안 그리실 건가요? (웃음) 잠시 내리막 길을 걸었으니, 다시 부흥하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사회초년생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이 직업을 선택 하실 건가요?
무엇이든 다시 되돌아 간다는 가정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특별한 스펙이나 자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정 스펙이나 자격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구인할 때의 기준은 나이, 성별, 인종을 떠나 무조건 실력이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면 애니메이션 제작자가 되는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스펙이라고 말하자면 ‘건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계통 야근 심한 거 아시죠? (웃음)
실력을 높이고 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무슨 프로그램이든 일단 기본적인 메뉴는 책으로 대충 익히고 여러 번의 습작을 통해 자신만의 작업 노하우를 만듭니다. 여러 번 하다 보면 주로 사용하는 명령어나 단축키가 저절로 익숙해지겠죠? 또 프로그램간의 호환성을 테스트하면 그 프로그램만의 장단점을 파악하는데 더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하고 활용하는데도 도움이 될 듯 하네요.
디자인이다 보니 감각이 뛰어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감각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감각을 키울 수 있는 팁을 부탁 드려요.
디자인은 첫 직장에 첫 직업이기도 했지만 항상 어려워요. 저는 의뢰가 들어오면 일단 비슷한 소재나 주제의 디자인들을 찾고, 평소에 모아놓은 잘된 디자인을 열어서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을 사용해요. 평소에 여러 종류의 디자인 자료를 모아놓으면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나 콘텐츠가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든 작품을 추천합니다. 연출의 강약 조절이 탁월해 감탄을 일으키곤 합니다. 애니메이션 ‘시구루이’도 추천하는데요. 실사영화보다도 섬뜩한 표현력이 대단한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책도 강력 추천합니다.
실력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나 콘텐츠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플래시에 관련된 어떤 책이든 앞부분에 메뉴에 대한 설명은 기본적으로 있으니까 보기 좋은 책을 구입하시면 됩니다. Tween이 장점인 플래시 애니메이션은 여러 번 작업해 보면서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 좋아요. 특히나 플래시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의 방법이 있으니 나만의 방법을 만드는 것을 추천합니다.
Tween을 이용한 액팅은 자신 있다고 생각되시면, 아진 출판사의 ‘셀프 애니메이션’이라는 책을 보세요. 제가 셀 애니메이션 방식의 액팅 공부를 했던 책인데요. 오래된 책이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본기를 익히는데 좋아요.
후배들이 갖추었으면 하는 자세나 역량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취미가 스트레스를 주지 않듯이 좋아하고 즐기는 자세를 갖추셨으면 좋겠습니다. 꾸준히 즐기다 보면 기회가 찾아올 겁니다. 돈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 따라오는 덤으로 생각하시고 너무 돈을 쫓아가진 마시길 바랍니다.
경기침체가 심해지면서 일거리가 떨어진 최근에는 제 스스로의 실력을 높이고자 에프터이펙트나, 프리미어를 공부했는데요. 공부를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초보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 보면 ‘해야 한다’는 ‘하고 싶다’를 절대 이길 수 없는 듯 합니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이라면 즐기는 자세로 임하시기 바랍니다.
이 직종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많이 보고, 많이 그리세요. 전망이 어떻다는 말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얘기는 너무 귀담아 듣지는 마세요. 자신의 소신대로, 하고 싶은 일이라면 열정적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한가지 제가 생각하는 팁을 드리자면, 애니메이션을 만드실 때 그냥 만드는 것보다 한가지의 주제를 정하고 만드시면 취업하는데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면접 시 제출하는 포트폴리오도 몇 주, 몇 달이 걸리든 객관적으로 봐도 완성도 높은 작품을 준비하세요. 완성도가 떨어지는 어설픈 작업물은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거든요.
멘토님의 직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내 직업은 OOO이다.
내 직업은 즐거운 취미 생활이다.
의뢰가 들어오고 시나리오 분석, 단가 측정, 기간 측정, 기타 협의하는 일을 할 때는 직업이라고 느껴지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서 캐릭터를 그리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할 때는 일이라는 생각보다 어린 시절 연습장에 만화를 가득 채워 그리며 즐기던 취미생활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거든요. 지금도 아내가 밥 먹자고 말하기 전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모니터 안에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앞으로 멘토님의 꿈이나 목표를 말씀해주세요.
이 일을 하게 될 줄도 몰랐던 제가 18년 째 이 일을 하고 있잖아요. 확실한 건 보는 것도 만드는 것도 즐겁게 하고 있는데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계속 할 계획입니다. 제가 없어도 제 그림들은 인터넷이나 책 등 여러 매체에 남아 사람들을 향해 웃으면서 이야기 할거라 생각하니 마냥 좋네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김정은
VM
담당부서:인터뷰
취재:김정은
INTERVIEW
김정은
dangmenso3@mailinfo.saramin.co.kr
EDITOR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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