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멘토님!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금 하시고 계신 일에 대해서 소개 부탁 드릴게요.
우선 저는 캐나다 교민이고 어렸을 때부터 캐나다에서 쭉 자라왔어요. 교육이라는 것은 제가 고등 학교 때 처음 접하게 되었고요. 교내"외 봉사활동을 하면서 교육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것이 토대가 되었던 것 같아요. 한국에는 2012년에 오게 되었는데 유치원이나 학원, 학교 등 여러 방면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경험도 많이 쌓게 되었고 통"번역 일도 종종 하고 있고요.
지금은 일산에 위치한 국제학교에서 중학교 과학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교육가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인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캐나다는 12학년, 그러니까 고2나 고3때 자아개인적성개발이라는 과목이 있어요. 저는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었는데, 이 과목을 통해서 처음에 하게 된 봉사활동이 주변 탁아소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몬테소리를 가르치는 것이었어요. 어른들은 성숙하고 대화가 통하기 때문에 가르치기 쉽지만 아이들은 컨트롤이 어렵죠. 그리고 그 때는 저도 많이 어렸기 때문에 화도 많이 내고 짜증도 내곤 했어요. 그런데 저를 가르쳤던 교사 분께서 저에게 하나씩 차근차근 역지사지로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그 전해주는 과정이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포터 설명 : 몬테소리법은 이태리의 여류 교육가인 동시, 로마대학의 교육학 강사이던 몬테소리가 1907년 로마의 빈민 자제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의 집’을 창설하고 이곳에서 스스로에 의하여 창안된 ‘몬테소리 놀이감’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실시한 교육법을 말한다. 몬테소리법(法)의 근본 원리는 자유, 정리된 환경 그리고 감각 교육의 중시에 있었다. 그녀에 의한 자유의 원리는 아동의 자기 발전에 적합한 환경을 전제로 하여 확립된다. 그러므로 이 교육법에 있어서는 읽기 "쓰기 "셈하기 등의 교육법에도 특색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또 몬테소리는 이와 같은 방법 외에 7세부터 11세까지의 어린이들에게 적용하는 또 하나의 몬테소리법을 창출하였다. 그것이 곧 ‘고등몬테소리법’이다. (츨처: 네이버 지식백과 몬테소리법 참조))
학창시절에 꿈의 방향을 잡기는 힘든데 멘토님의 경우는 비교적 금방 진로를 정하신 거네요?
‘내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구나’ 하는 막연한 느낌을 일단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럼 취업 준비를 하면서 교육과 관련된 또 다른 에피소드는 없으신가요?
제가 대학교 때 동아리를 만들었었어요. 제가 있던 도시는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킹스턴’ 이라는 곳인데, 당시 그 곳에 여성 범죄자 감호소가 있었어요. 그 때 제가 동아리에서 했던 활동이 수감자들이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교도소에 가는 것이었는데, 그 환경이 조금 독특하잖아요. 보안도 철저하고. 그런 극한 환경의 사람도 가르쳐보고 동시에 평범한 사람도 가르쳐보면서 저도 모르는 깊이가 생겼어요. 교육이라는 것이 그냥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입장으로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자아주도형으로 만들 수 있는 게 큰 뜻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지식을 주입하는 게 아니라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를 주도하는 거죠.
△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멘토님(좌)
말하다 보니 생각 나는 게 또 하나 있네요. 일반적으로 캐나다에서 대학생은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게 조금 어려워요. 제 경우에는 학업과 일을 동시에 했었는데 처음 일을 시작한 게 ‘스타벅스’ 였어요. 바리스타부터 시작하면서 일을 했었는데 저희 직원이 한 노부부에게 커피를 흘리는 일이 있었어요. 물론 사과를 드렸지만 약간 예민하신 상태여서 제가 끼어들게 됐는데 차근차근 설명 드리고 웃으면서 상황에 대한 사과를 다시 한 번 드리고 양해를 구했죠. 그리고 실수를 한 직원을 나무라기 보다는 역지사지의 입장을 이해시키기 위해 노부부의 시선에서 상황에 대한 피드백을 했죠. 그 상황에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게 힘들잖아요. 듣는 사람을 고려해야 하고 상대방의 상황까지도 신경 써야 하지요. 이 에피소드가 사실 별 건 아니지만, 저에게는 ‘나에게 그 사람의 장단점을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해주는 능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교육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따로 준비하신 게 있으신가요?
교육이라는 게 제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또 부모님도 약간의 귀띔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방향을 전환하여 교대를 가게 되었어요. 교육에 관련된 경험은 조금 있다고 생각했지만 기본적은 원리나 개념은 많이 부족한 상태였거든요. 교육학, 교육론 같은 것들을 배우면서 교육 과정을 전문적으로 기획하고 집행하고 실행하는 것을 공부했어요. 더불어서 인적자원론과 같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우면서 체계를 잡게 되었어요.
교육전문가가 꿈인 사람들은 보통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우선 제 경우에 전문인이 되기 위해서 했던 것은 주로 교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교육 스킬을 배우기 위한 워크샵 같은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은 글로벌 시대니까, 교육에서도 다방면으로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이 직업 저 직업을 다 경험해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토대로 경험을 해 보는 것이죠. 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는 아프리카 가서 봉사활동도 많이 해보고, 굳이 가르치는 것뿐 만 아니라 사람을 도와주는 것과 연관 있는 것에 도전을 많이 했었어요. 이론뿐 만 아니라 상호 교류와 관련된 방향으로 폭넓게 경험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거죠.
그 동안 영어나 수학을 포함해서 다양한 과목들을 학생들에게 과목도 가르쳐 오셨잖아요. 서로 다른 과목들인데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인가요?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것은 제 과목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교육학이나 Teaching방법론 들을 배우고 보니 다 원리는 똑같더라고요. 저도 따로 교육을 받으면서 피드백을 받았고 제 단점을 알아가곤 했어요. '처음에는 왜 나를 지적할까' 라는 생각에 언짢은 부분도 있었는데 나중에는 뿌듯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단점을 보완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에 수월했어요. 교육을 받으면서 장기적으로는 가르칠 수 있는 입장도 된 것이죠.
현재 멘토님이 몸 담고 계신 국제학교에서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우선 국제학교이기 때문에 특성상 한국 교과 과정과 외국 교과 과정이 각각 있는데 저는 외국 교과 과정을 맡고 있어요. 특성 상 한국인 교사들과 저희 원어민 교사들이 교대로 번갈아 가면서 일찍 출근합니다. 출근을 하면 회의를 들어가고 여느 선생님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공강일 때는 수업준비나 기타 준비를 하고 그리고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자습시간 감독도 하고요. 기숙학교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24시간 상주를 하세요. 저도 아이들과 같은 층에서 지내고요. 보통 학교 선생님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학교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국제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 하는 것도 똑같이 임용을 통해서 하는 것인가요?
그렇죠. 교대를 나오시고 교원 자격증이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국제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하려면 무엇을 준비 하는 것이 좋을 까요?
외국 교육 과정과 병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선생님이라도 영어를 기본적으로 해야 해요. 자기 분야가 사회, 국어, 과학 교과라 할 지라도 자기 분야에 맞는 영어는 조금씩은 알아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국제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는 일이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요.
많죠. (웃음) 지금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2년 정도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한국의 국제학교 이기 때문에 저는 외국인 교사의 자격으로 있어요. 그래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좀 있죠. 예를 들어서 아이들이 저 모르게 한국말을 하는데 저는 사실 알아 듣잖아요. 그래서 하는 실수가 못 알아듣는 척을 해야 하는데 영어로 한국말에 대한 반문을 하는 거죠. 그럼 아이들이 또 깜짝 놀라고요.
그리고 가르치면서 했던 실수는, 저는 과학을 가르치는데 식물 세포에 대한 수업을 하던 때였어요. 보통 학교에서는 약간 주입식으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토론 위주로도 수업을 진행하거든요. 그러면 저는 선생님의 입장으로서 토론을 주도해야 하는 입장인데, 아이들이 워낙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니까 한 쪽의 입장으로 말려들어가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수긍을 하면서 중립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죠. 토론이 끝나고 나면 오히려 정리하기가 어려운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 느끼는 점도 있어요. ‘내가 아이들한테서도 배우는 게 있구나’ 하는 것이지요.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아무래도 힘든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 1, 2, 3학년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이 사춘기인 시기잖아요. 그리고 아이들이 감정기복이 너무 심해요. 그런데 이 감정기복에 선생님이 말려들게 되면 오히려 더 큰 불화를 낳거든요. 아무래도 사춘기라서 수업 시간에 반항도 많이 하고, 특히 제 경우에는 외국인 선생님 자격으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아이들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겠네요. 그러면 멘토님은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하시는 편인가요?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엔 저도 아무것도 모르고 휩싸여서 아이들과 불화도 있고 그랬어요. 서로에게 상처 줄 말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게 사실 힘든 것이지만, 먼저 존중 해주면 결국은 아이들도 저를 존중 해 주더라고요.
사춘기의 아이들이고 예민하기 때문에, 그리고 국제학교 특성 상 아이들이 외국어고나 국제고 같은 특목고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성적에도 굉장히 예민해요. 선생님이 단순히 점수를 주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하죠. 인간 대 인간으로 공감을 사면서 지금 상황이 좋은 지 나쁜 지를 꼭 교과서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게끔 이해해 주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일반학교와 다른 기숙학교로 운영되는 국제학교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아이들에게는 선생님들과 접촉하는 게 편한 일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높은 사람이라는 인식도 있고요. 기숙교육을 통해서 오히려 더 가까워지고 영어로 수업하는 국제학교 이다 보니까 영어를 일상생활화 할 수 있어요.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영어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단기간에 실력 성장이 가능한지 궁금해요.
국제학교면 꼭 외국인아이들이 있는 것만은 아니에요. 한국 학생들이 대부분이죠. 처음에 들어와서는 영어에 대한 반감이 있어서 힘들어하는데, 24시간 선생님들이 상주하고 함께 지내면서 서로 교류하다 보니까 3~4개월 만에 유창해 지더라고요. 학습뿐 만 아니라 생활로 먼저 배우는 것이죠. Listening부터 터득하고 Speaking을 하고 학습에서 Reading과 writing을 배워가더라고요. 어린 아이가 성장하면서 언어를 처음 배워가는 과정을 닮은 거죠.
멘토님이 아이들을 가르칠 때 교육에 있어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요?
우선 교육이라는 것은 사람들 앞에 나가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가장 중요하고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 매개체와 능력이 중요한 것이거든요. 단순히 많이 안다고 해서 지식이 전달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지식을 전달하는 방법이 중요하고, 이것을 위해서 교육대나 사범대를 가서 배우는 것입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가를 배우는 것이고 이게 굉장히 중요하죠.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해요. 즉, 자신만의 ‘색깔’이죠.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이 편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결정하는 건 선생님 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색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슬럼프는 없으셨나요?
물론 있었죠. (웃음) 조금 심했던 슬럼프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보다는 준비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 하고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50 대 50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교사는 어떤 조직에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 할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교대 가서도 예를 들어서 저는 제 색깔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교육학이나 교육이론들을 배우면서 ‘왜 배워야 하지?’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이 저를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장 심했을 때는 교생 시절이었어요. 현직 선생님들이 제가 가르치는 것을 보고 피드백을 주시니까 제가 컨트롤 받는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인데 생각과도 많이 다르고 너무 엄격한 거에요. 그래서 그 때 학교를 3개월 정도 쉬었어요. 여행도 다니고 혼자 생각을 정리했죠. 그 때 담당 교수님께서 저를 설득하기보다는 이해를 하면서 달래주셨어요. 전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일이 다 순탄치는 않은 것이지만 이 험난한 시기만 겪으면 다음부터는 스스로가 성숙되어 있을 거라고 말씀해 주셨죠.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정말 싫고 힘들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토님이 교사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즐겁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죠? (웃음)
제가 슬럼프를 겪으면서 몸도 많이 약해지고 마치 폐인처럼 지냈었는데 이것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 가족 덕분이었어요. 저를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었거든요. 저에게는 그런 분이 제 할머니였어요. 이민 때문에 할머니와 20 여 년을 떨어져 살았지만 매일같이 전화하고 그랬거든요. 한국에 온 이유 중 하나에 할머니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전화해도 그냥 들어주시고 1초가 되었든 10초가 되었든 위로가 되거든요. 물론 부족한 점에 대한 평가도 많이 해 주세요. 이게 가장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마음도 기댈 수 있고 정신적으로, 일 적으로도 도움을 많이 주시거든요.
일 적으로는 어떤 부분을 평가해 주시는 건가요?
할머니께서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거든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된 데에는 집안 환경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네요. 어머니께서는 중학교 영어선생님, 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선생님 이셨거든요.
그래서 할머님께서도 멘토님을 더 잘 이해해 주시고 힘이 되어주실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멘토님은 틀에 박힌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편이신데, 그러면 남들과는 다른 교사생활을 하는 선생님 이실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반 공인 활동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요. 하다 보니까 제 직업이 묻어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교육박람회나 문학설명회의 경우 밴쿠버에서는 한국 사람이 소수 민족이에요. 그런데 2010년도 이후 한국에서 많이 유학을 오려고 하는 추세에요. 그래서 제가 밴쿠버 시 교육청에 제의를 해 봤어요. 한국에서 유학 관련된 설명회를 개최하거나 박람회를 열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그게 2년 만에 통과가 되어 한국에서 교육박람회를 할 때 작년부터 밴쿠버 시 교육청도 함께 했죠. 올 해가 한국과 캐나다 수교 50주년인데요. 제가 대사관에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감사해요.
△ 지난 6월 30일에 진행된 한국-캐나다 수교 30주년 행사사진. 김라나 멘토는 지금도 끊임 없이 자신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전하고 있다.
교사 경력이 꽤 있으시다 보니까 신입 교사들의 교육부분은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궁금해요.
우선 저는 새로 선생님이 들어 오시면 그 분만의 색깔을 먼저 존중해주는 편이에요. 그 분 만의 교육 방법을 제가 조화시켜야 하거든요. 한 편으로 듣는 입장이 되어서 피드백을 줘야 하는데 그럴 때 저만의 매뉴얼을 적용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효과적인 방법이나, 시청각 자료 활용법 등 과 함께 피드백을 해요. 전문인의 입장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인데 그 분들이 나중에는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것이니까 제 경험과 그들의 지식을 조율하는 중간자의 입장에 놓이게 됩니다.
통 번역 일도 병행하고 계시던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지금도 프리랜서처럼 하고는 있는데, 처음에 시작했던 계기를 말씀 드리자면, 저희 이모님이 화가이신데요. 캐나다에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와 어머니가 직접 이모님 작품 카탈로그를 가지고 거의 백육십 여 개의 갤러리를 돌아다녔어요. 세 네 군데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 중 한 관장님과 저희 이모님을 연결해드리게 되었어요. 저희 이모님은 영어를 일체 못하시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도와드린 게 지금 하는 통 번역 일의 시작이 되었죠. 그 때 그 관장님께서 저를 잘 봐주셔서 지금도 제가 밴쿠버에 있을 때 한국 아티스트들이오면 제게 동시통역 일을 맡겨주세요.
그리고 개인적인 히스토리인데 제가 미인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거든요. 그 대회를 통해 제가 밴쿠버에서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외국 사람들을 대할 때 제가 대변인 입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교사생활도 같이 하다 보니까 밴쿠버 교육청에서도 한국 학생들이나 이민자들이 오면 제게 맡겨주시고 그러면 또 그 때는 통역하는 입장이 되고요. 그러다 보니 기회가 많이 생겼고 경험도 쌓게 된 것 같아요.
△ 미스코리아 대회 참가 시절(좌) 와 당선 사진(우)
멘토님께서 선생님으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하신 일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우선 전문 교사가 되기 위해 교대를 갔고,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과학교육의 경우는 체험학습이나 실험 같은 것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과학 교사의 메리트 인 것 같은데요. 제 경우에는 과학 쪽으로는 워크 샵에 참여하면서 시각을 길렀고 저만의 Teaching 전략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게 조금 어려웠었죠.
그러면 Teaching 전략을 기획하면서 어떤 점이 멘토님께 어려웠었나요?
똑 같은 실험을 가지고 교육을 진행하더라도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예시를 드는 것이 중요해요. 산성, 염기성에 대해 가르치더라도 산성의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아이들은 식초 정도만 생각하는 거에요. 이런 것을 일상생활화 해서 가르치면 이해가 빠르죠. 조금 웃기게 생각할 수 있는, 예를 들면 액젓 같은 것을 직접 가지고 와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어려웠죠.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 아이들의 시선에서 보고자 노력했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쉽게 터득하면서 영어라는 것도 금방 접근을 하게 되더라고요.
교사로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사실 요즘에는 기회가 많은 편이라고 봐요. 그래서 도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인데, 특히 한국에서 교육 쪽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컨퍼런스도 많이 가보고, 또 대학교에 여러가지 동아리가 많잖아요. 꼭 교육과 연관되는 활동이 아니어도 자기만의 취미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단체활동을 우선 권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모든 학생은 똑같지 않고 또 색깔도 굉장히 강해요. 흔한 것이 아닌 자기 만의 색깔을 찾는 방법을 아는 것이 교육에서 굉장히 중요한데, 단체생활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죠.
교사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 편이세요?
아까 말씀 드렸던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대학교 1학년 때 나가서 수상을 하게 되었죠. 캐나다 미로 선발되었는데 이런 타이틀을 갖다 보니 한인들 하고 교류할 기회가 생기더라고요. 이것을 통해서 바깥사회로 나가게 되었어요. 저는 선생님이라는 본연의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대표’라는 타이틀을 통해 각 계 각 층의 사람들을 만났죠. 전문가들도 만나고 초대도 받으면서 전시회, 공연 같은 것을 보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마치 황무지에 혼자 떨어져 있다가 이것 저것 발견하면서 호기심을 갖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풀었죠.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 가는 게 저에게는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었어요.
△ 미스코리아 대회 시절 화보 사진
수학문제 풀기가 멘토님의 취미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맞아요. (웃음) 참 독특한 취미활동인데 제가 친구들을 만나면 수다도 떨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집에서는 독서도 하고 수학문제도 풀어요. 풀면 왠지 제 두뇌가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 달까요? 스도쿠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아요.
교사가 가져야 할 자질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우선 교사로서 가장 갖추어야 할 소양은 배려심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은 수학공식처럼 1+1=2라는 것으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상대방에게 기대를 하기 보다는 먼저 다가가서 배려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긍정입니다. 처음에는 못 했던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선생님이 조언해주고 이끌어주는 것에 따라서 가능성이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긍정의 힘이 중요해요. 색안경을 끼고 보면 오래 못 가고 자신에게 해만 됩니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입장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해요.
학교 선생님으로서 업무 관련해서 해 주실 수 있는 조언 부탁 드립니다.
저는 지금 외국인선생님으로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 외에 많이 힘든 업무는 없어요. 하지만 보통의 선생님들은 교육 외에 학적 업무나 교사 업무 같은 것이 많아요. 이런 것이 조금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지만 하나씩 배우다 보면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되도 쉽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짜여진 틀 안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주어진 일들을 배워나간다는 기분으로 즐기면서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업무를 할 때는 사람들 간의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해요. 시간약속이나 학생들과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 선생님들과도 서로를 존중 하는 것에 신경 써야 하고요.
멘토님은 미인대회라는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혹시 교사생활에는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미인대회는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스테이지에 딱 서는 순간, 보여준다는 생각 보다는 사람에게 강의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무대공포증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어쩌면 이런 부분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죠. (웃음)
어린 후배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으시다면요?
Oliver Sacks 라는 의사가 쓴 'Awakening'이라는 책이 있어요. 91년에 ‘사랑의 기적’이라는 이름의 영화로 개봉했죠. 단순히 의료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쓴 게 아니라, 선생님이 학생에게 다가가듯이 의사들이 환자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에요. 그걸 보면서 내가 누구를 상대할 때 모든 마음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강의할 때도 그 작품을 많이 예로 들기도 했어요. 그 책이 학교 다닐 때 과제로 받으면서 알게 된 책이기는 하지만 저에게 영향을 많이 준 책이에요.
멘토님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나의 행복은 모든 사람의 지지, 그리고 사랑에서 온다고 생각해요. 사랑도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행복이라는 단어는 나의 노력뿐 만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교육이라는 분야가 부담이 많이 되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의 한 마디 부탁 드릴게요.
만약에 교육 쪽이 적성에 맞고 미래도 그 쪽으로 꿈꾸고 있는 분들은 우선 한국에서는 기본적인 것을 끝내는 것이 중요해요. 교대로 가거나 강사의 길로 접어들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에요.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거든요. 적어도 2~3년 정도는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도 쌓고, 자기 분야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경험을 조금씩 쌓아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겪어보는 것을 권유 드리고 싶어요. 그러다 보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그 경험이 단순한 것 보다는 교육과 관련된 분야를 우선적으로 경험하시는 것이 좋겠죠. 그리고 멀리, 넓게 생각 하시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멘토님께 교육이란 OOO다.
저에게 교육이라는 것은 솔직히 말씀 드리면 행복의 문 이라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뒷받침이 중요한 물질만능주의 사회잖아요. 지금 취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나 사회초년생 분들 중 목적이 돈인 경우가 있어요. 그런 부분도 필요 할 수 있겠지만 우선 자기가 즐기면서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생목표를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이 여러 번이 있는데 인생을 종착역이라고 생각하면 간이역은 많잖아요. 간이역에서 쉴 수도 있지만 그 간이역에서 아예 끝나는 경우도 많거든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종착역까지 갈 수 있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교육은 행복의 문이에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임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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