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까지 약 20년간 무역만을 했는데, 무역에서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저는 복합적으로 많은 일을 했어요. 저는 ‘한길무역’이라는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가죽’ 아이템을 다뤘는데, 일반적이지 않고 특수한 아이템이다 보니 쉽지 않았어요.
보통 무역회사는 영업부에서 Order(주문)을 받고 관리부로 넘기면 끝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한길무역’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영업부에서 관여하여 관리부, 생산부와 Cross Check System을 도입하여 모든 문제의 출발점(Buyer상담-Order 수주)과 종결 점(생산 및 선적)이 영업부에서 주관하게 되어 있어 업무에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제품에 하자가 적어 Buyer의 불만이 현격하게 줄게 되었고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어 Buyer에게 진행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있게 되었어요. 혹시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미리 상의를 하여 Buyer들의 만족도가 컸고, 신뢰도가 높아져 Repeat Order를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즉, Buyer 상담 시 얻었던 감을, 자재준비, 생산관리, 출고 때 가지 유지하게 되어 구매자들에게 불평을 듣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자연스럽게 Sample준비, Buyer 상담, 자재준비, 생산계획, Nego계획을 세워 이에 따른 자금계획까지도 잡게 되어 무역의 전반적인 업무를 물 흐르듯이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을 다 경험하고 담당했어요.
많은 직업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무역 일을 처음 하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무역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어요. 어릴 적 꿈은 외교관이 되고 싶었죠. 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일반직장생활로 눈을 돌려보니 무역이 들어왔어요. 나에겐 낫 설었던 분야였지만 그 당시 무역은 국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으로 많이 활성화 되어있었고 ‘수출이 곧 애국이다’라는 의식이 있었고 또한 남자라면 해외도 많이 나가고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역을 선택하게 되었죠.
전공보다 관심이 많은 분야를 선택하신 거네요.
제가 대학교를 다닐 당시 무역회사가 인기가 많은 직업이었어요. 지금은 공무원, 교사 등의 안정적인 직업이 인기가 많은 것처럼 직업도 시대의 흐름을 많이 따르는 것 같아요. 저는 영문학을 전공하며 무역을 복수전공 한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무역에 관련된 국제 Marketing 등 International Business와 관련된 수업을 많이 수강했기 때문에 무역 전문가로서의 꿈을 가진 것 같아요.
어떠한 아이템이든지 시즌이 있을 것 같아요. 무역도 성수기가 있나요? 어떤 기간이 가장 바쁘세요?
7,8월이 가장 바쁜 시기에요. 가죽옷이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는 미국의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 秋收感謝節) 기간이에요. 미국을 기준으로 물량의 70~80%가 그 기간에 팔리기 때문에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는 기간이 가장 바쁘고 정신이 없어요.
보통 그러면 물건이 도착하려면 어느 정도 기간이 소요되나요?
물건이 도착하기 위해서 자재준비부터 생산완료까지는 2~4개월 정도 소요되며, 공장 출고, 선적 후 항해, 내륙이동 등 이동에만 최대 2~3개월 정도 소요 되요. 이것은 최소한의 기간을 생각한 것이고, 이보다 여유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2~4개월 전부터 준비기간이 필요하죠.
상품 선적 일정을 기준으로, 8월 말 배송은 여유가 없어요. 7월 말 선적은 8월에 비해 한 달 정도 여유가 있겠죠. 즉, 상품 생산 및 출고 시점을 기준으로 6~8월이 가장 바쁘다는 결론이 나오죠. 물론 생산에 필요한 자재 조달 혹은 중국 등 해외 생산공장으로
원 "부자재를 보내는 경우를 감안하면 최소한 2~3개월 전부터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 가죽 원단 공장(Tannery) 내부 모습과 완성된 가죽 제품 샘플
꼼꼼하게 따져 보지 않으면 작은 실수가 큰 파장을 끼칠 것 같은데요. 실제 업무를 잘 수행하려면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3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트렌드와 아이템, 그리고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무역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해요. 장사잖아요? 어디서 무엇을 사다가 어디에서 어떻게 팔아야 하는 지를 알아야 하지요. 그래서 트렌드와 아이템이 중요한 거예요.
그리고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입에서
나오는 단순한 말만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이 일을 위해야 하는
지 당위성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고 열정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봐요.
무역 분야에서 정말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으신 것 같아요. 다양한 노하우 중에서 이동명님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복합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요. 보통 무역을 하면 Buyer들 앞에서 상담만
하는 즉, 제품에 대한 설명을 잘하여 Order를 수주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을 구비하면
되는데, 저는 실제로 현장(공장)에 자주 가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
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보완 수정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어요. 자연스럽게 영업과 생산 쪽 모두를 자연스레 알게 되어 Buyer상담 시 요구
되는 사항들의 결과를 유추 할 수 있어 문제점을 사전에 발견하여 잘못된 부분에 대해
미리 보완을 하거나 아니면 Excuse(양해)를 구하여 향후 문제점을 없애는 A/S와 대비
되는 B/S(Before Service)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게 되었습니다.
일이 돌아가는 흐름을 아는 것도 정말 중요한 일이군요. 세심한 사항까지 습득하면서 업무에 임하였고 성과가 났을 때 뿌듯함도 배가 될 것 같은데요. 가장 뿌듯했던 성과는 무엇이었어요?
무역을 하다 보면 수출하려는 국가의 경기에 민감하게 되는데 그 나라 Market(시장)이
좋지 않는 상황에서도 제가 몸담았던 회사의 어려움을 생각하여 Order를 줄이지 않고
늘려 주었던 몇몇 Buyer들이 생각나네요. 그들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Order가 분명히 줄
었음에도 제가 몸담았던 회사와 저를 위해 타 회사로 나가던 Order를 저에게로 돌려
주었던 고마운 마음 씀씀이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잠시 국내사업부에서 내수(L백화점과 H백화점 중심의 영업)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
데 하루 매출이 1억 원을 넘긴 적이 몇 번 있었지요. 무스탕이 한창 유행할 때였지만
옷의 가격이 30만원대~98만원이 주류를 이루었으니 행거 9~11개 정도의 매장에서
1억 원 매출은 엄청난 금액이었죠. 판매 사원들도 수고를 많이 하였지만 주말에 매장에
지원 나가서 제품의 특징, 원단 소재, 제품의 포인트 등을 자세히 설명하면 신뢰도가
높아져서 그런지 판매에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한 분야의 일을 오래 하시다 보면 보람을 느끼실 때도 많으실 것 같아요. 주로 어떤 때 이 일에 보람을 느끼시나요?
사소하지만,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을 길가다가 마주치는 거에요. 저는 제작, 생산, 관리, 판매 모든 면에서 관여를 했기 때문에 제가 만든 옷이라고 생각을 해요. 사람들이 입는 옷은 종류도 다양하고, 다 다르기 때문에 내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난 확률이 적은데, 그런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정말 기뻐요. 이런 경험을 하면 ‘내가 이래서 무역을 하는구나!!’ 라고 느껴요.
보람을 느끼신 일 이외에도 무역업만의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무역을 하면서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남들보다 여러 나라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고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요. K회장님의 명언처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또한, 무역은 결국 장사인데,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라서 좋은 것 같아요.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겠죠? 무역을 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입니까?
‘가죽’이라는 아이템을 다루는 것이 힘들었어요. 물론 무역의 공정은 대부분 비슷한데 가죽 옷은 힘들었던 이유가 보편화 된 기준이 없었거든요. 다른 것들은 규정(Global standard)이 잘 되어있어 문제의 소지가 적은데, 가죽은 동물의 피부이다 보니 흠집, 상처, 병치레 자국 등의 문제로 인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견해로 인해 분쟁의 소지를 늘 가지고 있어 어려움이 많아요.
무역을 하다 보면 해외에도 많이 나가시지요? 어떤 나라에 가보셨나요? 그리고 가보셨던 나라 중에 어디가 가장 인상에 남았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직장생활 초기에는 독일이 주 거래처라서 가장 많이 갔고,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이태리, 중국, 일본, 인도, 파키스탄, 미국, 캐나다 등 많은 나라로 돌아다녔어요. 모두 일로서 방문한 곳이기 때문에 여행은 못했어요. 그 멋진 도시, 멋진 풍경들을 뒤로하고 돌아올 때마다 정말 아쉬웠죠. 가장 아쉬웠던 도시는 모차르트의 고향인 ‘짤츠부르크(Salzburg)’였어요. 딱 하루만이라도 그 곳에 머물면서 묘한 영감을 즐기고 싶었는데 다음 일정이 있어서 하룻밤 조차 머물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어요. 주변이 모두 아름다운 산으로 둘러 쌓인 그림 같은 도시였어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꼭 한번 짤츠부르크에 가서 하루만이라도 머물고 싶어요. 일이 아니라 여행으로요. (웃음)
정말 많은 나라를 가보셨네요. 그 나라들 중에 조금은 힘든 국가가 있었나요?
국가적으로는 인도를 들 수 있어요. Yes(고개를 가로젓는다)와 No(고개를 끄떡인다)가
일반적인 상식과 반대가 된다는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상담 시 초기에는 잘 나가다가 중간쯤부터 상대방이 Yes인지 No인지가 헷갈리고,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순박하고 선량해 보이나 신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는 당연히 유태인들을 상대해야 하는 점이 힘들었어요. 유태인들은 까다롭고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고 업무적으로도 완벽주의자거든요. 그래서 유태인들과 거래를 할 때는 조금 더 완벽하게 일을 하려고 긴장하며 일하곤 했죠.
△ 인도방문 당시 거래처 담당자와 함께 한 이동명 멘토님
중국에서도 잠깐 사업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곳은 어떠셨나요?
1년 정도 중국 상해에서 사업을 했었죠. 서울보다 물가가 조금 더 비싸더라고요.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치안이 안 좋아서 택시를 함부로 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보통 콜택시를 부르던가 하죠. 그런데, ‘상해’만큼은 택시를 아무데서나 타도 안전하고, 어디를 가던지 영어를 하는 사람이 많아서 의사소통에도 별 문제가 없어 좋아요.
△ 중국 하이닝 현지 사무실에서의 이동명 멘토님과 현지 공장 전경
중국 시장에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직접 사업을 해보신 멘토님은 중국 시장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맞아요. 점점 중국의 입지가 커지고 있어요. 중국어를 할 줄 안다면 큰 메리트가 되는 시대가 올 것 같아요. 저와 친한 Buyer의 아들이 대학졸업 후 당연히 NY Manhattan에서 Business를 할 것으로 기대를 했는데 의외로 상해에서 일을 배우면서 시작하게 하더군요. 정말로 놀랐습니다. 우리 시대는 “영어를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사회적 지위를 가르는 중요한 척도였는데 앞으로는 중국어를 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기준이 될 듯합니다.
이제 상해 시대가 온 거라고 생각을 해요.
한 분야에서 20년이라는 기간은 정말 긴 기간인데요, 이제까지 무역 업무를 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자부심 인 것 같아요.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그 당시 회사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국가가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눈부시게 경제가 성장하니까 기분도 좋고, 나라 성장에 기여했다는 자부심도 컸어요. 또한, 내가 만든 옷을 보고 잘 만들었고, 옷이 좋다며 재 구매를 하는 바이어들을 통해 무역 인으로서 자부심과 희열을 느낄 수 있었어요.
△ 사무실에서의 이동명 멘토님
해외 바이어들과 업무를 하면서 특별한 추억이나 기업 남는 경험이 있으신가요?
무역업무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일이에요. 그 당시 해외영업을 위해 1년에 두 번 독일을 갔어요. 독일에 가면 차를 빌려 일주일간 남부 브레멘(Bremen)에서부터 북부 함부르크(Hamburg)까지 바이어들을 찾아 다니며 만나고 그랬는데, 사장님과 함께 가는 두 번째 출장에서 제가 비행기 표를 잊어버렸어요. 샘플을 들고 다니며 상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장님 혼자서는 갈 수도 없었고, 같은 시간대의 비행기표를 구하지도 못했어요. 다행히 서둘러 공항에 도착했기 때문에 예정시간 2시간 전에 도착을 했고,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었어요. 할 수 없이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인근 대한항공 지사에 가서 ‘비행기표를 분실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라고 운을 떼자 그 곳 독일인 직원들이 난감해 하더군요. 찾지 못한다는 답과 함께 새로 표를 구매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같은 시간대 여러 도시를 경유하는 표를 구할 수가 없었지요.
지금은 모든 것이 전산화되어 간단히 재 발행되지만 당시에는 수기로 작성한 티켓 북(여러 장을 가지고 티켓팅 할 때 마다 한 장씩 떼어서 주던)시대였으니 비행기표 분실은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출장 가기 전 비행기 티켓, 여권을 모두 복사를 해두었어요. 그것을 카운터에 내보이며 이대로 재 발행해 달라고 하니 그 직원이 웃으면서 어떻게 사본을 가지고 있느냐고 의아해 하더군요. 그 사본 그대로 기록하여 주면서 혹시 다른 사람이 제가 분실한 비행기표를 사용한 경우에 제가 책임을 지고 요금을 정산해 준다는 각서를 쓰고 표를 재 발행을 받았지요. 물론, 비행기 티켓에도 제 이름이 적혀있으니 어차피 누군가 주워도 사용을 못 할거라고 생각을 했죠. 비행기 티켓은 잃어버렸지만, 미리미리 꼼꼼하게 준비하는 성격 덕분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요. 그 뒤로는 단 한번도 분실하지 않았어요.
비전공자로서 처음 업무를 접했을 때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무역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무역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특히 의류를 아이템으로 무역을 하는 경우, Fashion Trend, 큰 틀의 Design 및 세부적인 Detail, 정확한 재단, 치밀한 봉제, 깔끔한 마무리 등 각 공정 별로 특성 및 옷에 대해 잘 알아야 해요.
정리를 하면 ①FASHION을 알아야 된다 ② 무역을 알아야 된다 ③ 외국어를 익혀야 된다 ④ 옷을 알아야 한다 ⑤ 가죽를 알아야 한다 ⑥ 현장중심를 알아야 한다 ⑦국제정세 및 감각을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무역에서 언어능력은 매우 중요하죠. 영어는 세계 공용어이니 가장 중요하고, 중국어가 요즘엔 강세로 떠오르고 있어요. 또한, ‘무역사’라는 자격증을 많이 필요로 한다고 하는데 물론 회사에서 요구를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자격증이 있다면, 그 사람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으니 도움은 되겠죠? (웃음)
해외무역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자주하는 실수는 무엇인가요?
물어보지 않고 자기 판단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알 수 있는 답이 있어도 물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맞는 것 같아도 윗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수긍을 해야 해요. 혹시나 윗사람이 틀리면 나중에 사람 없는 곳에서 건의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틀렸는지 아닌지를 모르고 기준을 나에게 두면 실수를 하게 되는데, 기준을 상대방이나 조직에 두게 된다 사내 인간 관계가 원활하게 되면 실수도 줄일 수 있고 설사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기 혼자만 책임을 지는 일이 줄어들게 되죠.
이를 바탕으로 동료들에게 신뢰감을 주어 업무 협조를 받을 수 있고 윗사람도 인정을 받아 재미있고 즐겁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요즘 취업난에 걱정이 많은 구직자나 학생들에게 조언해주세요.
요즈음 젊은이들은 어려서부터 편식하는 습관이 있는데 편식을 하면 안돼요. 우리네 가정에서 흔히 하는 얘기 ‘가정교육’ 내지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들 세대 때는 어른들이 계셔서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배워 식탁에서 편식이라는 개념 없이 주는 대로 먹고 자라서 학교, 군대,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잘 적응하는 경향이 있는데 요즈음 세대들은 어려서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먹고 하고 싶은 것만하고 자라서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식습관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서는 직장, 사회, 결혼까지 편식을 하게 되요. 사회에는 먹을 게 많고, 여러 가지를 먹어야 해요. 그런데 편식을 하게 되면, 그 음식이 없을 경우 굶게 되지요. 회사의 경우도 꼭 그 회사만 가야 한다고 기준을 정하면, 그 회사에 못 가게 될 경우 놀아야 해요. 하지만 다른 것을 바라보면 다른 것을 먹을 수 있고, 다른 대처 방안이 생기죠. 직업을 못 갖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맞지 않다고 안 맞추려 하는 거에요. 잘 생각해보면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기준이 하나가 아닐 거에요.
선택을 할 때 모든 기준을 맞추려 하지 말고 한 가지 기준이 맞지 않으면, 나머지 한가지를 보고결정을 하고 내 운명으로 받아드리세요. 무역의 경우는 더욱 그렇지요. 내가 무역을 하며 맞게 된 아이템 또한 내 운명이에요. 좋은 아이템과 직장을 만나면 그런 상황에 감사해야 하죠. 직업의 만족도는 마음먹기 달려있는 것 같아요.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불평하면서도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일은 먹음 먹기에 달려 있고 유연성을 가지고 순응하며 적응하는 것이 필요해요. 고리고 또 다른 고지(어려운 일)를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다 보면 고지가 내 앞에 서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한 도전정신이 먼 훗날 나의 성공에 도움이 되고, 사업을 할 때는 더욱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멘토님께서도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인생의 멘토가 있으신가요?
제가 정직하게 일할 수 있었던 데에는 ‘김대열 사장님’의 역할이 가장 컸어요. 그 분은 7시에 출근해서 10시에 퇴근하실 정도로 항상 일에만 몰두하셨어요. 일에 대한 열정이 회사를 성장시키고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여 주어 거기에 달린 식구들의 생계까지 신경쓰셨구나를 제가 사업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또 한 분은 GMI 이은성 사장님이시죠.
이 분은 Agent 영업을 주로 하셨는데 열정이 대단하셨던 분이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수년 전 2월 스산한 겨울비가 내리는 날에 미국 뉴욕으로 출장을 같이 갔었어요. 호텔에 여장을 풀자 마자 다음 날 새벽 5시 호텔 로비에서 운동복 차림으로 만나자고 하셨어요. 장시간 비행으로 피곤해서 첫 날(일요일)에 늦잠도 즐길 수 있었겠지만 그 분은 늘 하던 것처럼 조깅을 하자고 하셨어요. 그 날을 잊을 수 없는 것은 간 밤에 비가 눈으로 바뀌어 칼 바람과 방판 길을 뚫고 왕복 2시간을 달리고 나니 새로운 도전정신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분이 처음 사업 시작하고 초창기에는 Order받으러 간 Buyer 사무실 앞에서 애국가를 부른 적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 수출의 DNA가 뼈 속까지 스며든 분이시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10여명의 직원들과 함께 1억불 수출을 했으니까 대단하신 분 아닙니까?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여러 분 계시지만 특별히 두 분은 제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은 약속장소에 항상 시간과 가는 법 등을 숙지하고 동선과 시간을 미리 Check 하십니다. 일과 자기 자신 모두에게 엄격하며 완벽한 모습을 보이려 하셨어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되었고, 존경해요.
미래의 인생 계획이 있으신가요?
젊었었을 때 제 꿈은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었어요. 지난 몇 년간 아내의 투병을 도우며 생각이 바뀌더군요. 이제 적게는 90세, 많게는 110세가지 살아야 하잖아요. 60세까지는 도시에서, 이후는 시골로 가서 과수나무를 키우며 90세까지 움직이며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품목은 정해 놓았는데 앞으로 지역과 농지를 구입하며 차근히 준비를 해나가려 합니다. 하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제 몸 속에 피와 함께 흐르는 ‘수출 DNA’는 늘 녹슬지 않게 갈고 닦으면서요.하하하.
생각해놓은 품목이 무엇인지 살짝 귀띔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상해에 가면 일본에서 들여온 쌀이 한 가마니에 100만원에 팔리고, 한국 양평에서도 200만원에 쌀을 파는데,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라고 합니다.
농약과 비료를 안주는 유기농을 넘어서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재배가 아닌 사랑으로 돌보고 응원하여 키우는 이른바 “자연농”의 개념으로 일본의 아오모리현(縣)의 기무라 아키노리(木村秋則)씨가 성공한 ‘기적의 사과’와 황산화 물질이 블루베리 보다 7배가 더 많은 ‘아로니아’(Aronia, Blackchokrberry)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
나에게 무역이란 000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치열한 삶의 현장이며, 전쟁이라고 생각해요. 무역 일을 하는 것은 인생사와 같아요. 이 세상에 사람이 10명이 있고, 사과가 10개가 있다고 칠 때, 한 명당 한 개의 사과를 나누는 개념이 있다면 모두 공평하게 하나씩 먹을 수 있는데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힘이 센 사람이 5개 이상을 가져요. 20%의 무리가 50% 이상의 사과를 가져가고, 나머지 80%의 무리가 50%로 나눠 갖는 거에요. 이렇게 우리는 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생활 하는 것 같아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한유경
출판.편집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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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이수아,한유경
INTERVIEW
이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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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한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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