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말씀 드리면 공연예술분야 기획, 마케팅 쪽에서 일해왔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여러 종류의 이력이 많은데요. (웃음) 오늘 그것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해요.
멘토님은 정치외교학을 전공하셨잖아요. 어떻게 공연예술분야로 전환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원래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고 9년 전에는 국회에 있었어요.
17대 국회 때 처음 들어가서 일을 했었죠. 의정홍보와 정무 보좌가 제 일이었어요. 어렵게 국회를 들어갔고 전공에 맞는 일 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구의 일을 담당 하게 됐으니 참 재미있게 활동했었는데요.
아무래도 소속되어있는 곳은 국회 사무처, 하는 일은 299명의 의원들이 함께 있는 의원회관에서 공무원의 삶을 사는 것이었으니까 저에게는 답답한 느낌이 조금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국회 보좌직원 운동회나, 전당대회, 시당 대회나 지역구 행사에서도 청년을 많이 동원하고 (리포터 설명 : 박은하 멘토님은 경희대 총학생회 출신) 활동적인 일에도 잘 나서고 또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화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니까 심지어 같이 일하는 분들도 ‘공연 쪽 일처럼 활동적인 것을 해보는 게 어떻냐’는 제의를 받기도 했어요.
공무원이면 정적인 느낌이 드는게 사실인데 멘토님은 굉장히 독특한 경우인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전공도 그 방향이 아니었고, 그 쪽으로 지인도 없던 상태였거든요. 사실 인터뷰를 망설였던 이유도, 제가 사실 길을 찾고 있는 중이지 전문적인 기획자 코스를 밟은 것은 아니었거든요. 완전히 맨땅의 헤딩처럼 시작한 것이죠.
국회에서 일하시면서 공연예술 분야를 꿈꾸는 것은 조금 어렵지 않았나요?
제가 국회에 있을 때 공연을 굉장히 많이 봤었거든요. 그 때가 오페라의 유령, 맘마미아와 같은 뮤지컬로 인해 붐이 한참 일어나던 때였어요. 그 때 의원실로 초대 티켓이 들어오곤 했었어요. 제가 제일 막내니까 저에게 주시곤 하셨죠. 그래서 그런 티켓들이 들어오면 정말 귀한 티켓이라 열심히 보러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뮤지컬을 보는 안목이 생기고 관심도 많이 생기더라고요.
원래 공연예술이나 기획 쪽에 흥미가 있으셨던 거에요?
물론 있었죠. 대학생 때 총학생회 문화국장을 하면서 대동제를 기획하고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도 쓰면서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그 때가 제가 목표로 하는 공연기획분야에 대한 토양이 만들어지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또 요즘은 페이스북이 유행이지만 그 때에는 싸이월드가 유행 했었는데 , 같은 사진을 포스팅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끌고 집중하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예를 들어 공연 티켓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고 재미있게 나눠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해서 소소하게 저만의 이벤트를 해보기도 했고요.
라디오프로그램 진행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공연 쪽에서 일할 때 진행 했었어요.
청와대에서 일하는 지인 분의 소개로2008년도에 라디오 21이라는 인터넷라디오방송국에서 문화 콘텐츠를 컨셉으로 방송했었죠. 매일 뮤지컬을 선정해서 청취자 분들께 소개해주고 좋은 OST도 직접 골라서 들려드렸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좋은 음반도 사서 방송했었고요. 정말 많은 열정을 쏟았었죠. 스스로의 힘으로 매일 매일 했었어요. 애착이 굉장히 컸었어요.
말씀을 나누다 보니까 끼가 굉장하실 것 같은데요. 멘토님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요.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이쪽에 눈을 뜨게 된 계기일 수도 있는데, 아버님이 목사님이시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때 교회에서 반주도 하고 그랬어요. 여동생은 피아노 전공이고요. 또 아버지께서 성악도 좋아하셨습니다. 아직도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에서 아마추어 성악가 자격으로 가끔 공연도 하시거든요. 예술적인 것을 즐기는 가정 분위기에 있다 보니까 자연스레 흥미를 갖게 된 것 같네요. 어렸을 때 생각나는 장면을 떠올려보면, 부모님이 들어오실 때에 맞춰서 동생들과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춤추는 모습도 연출해보고 그랬었어요.
그 때부터 기획하고 연출하는 것을 좋아하셨다는 말이네요?
말하고 보니까 그렇네요! (웃음) 그런 장면들이 기억에 남네요.
멘토님은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이신 것 같아요.
원래 이 쪽 분야 일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과도 잘 이야기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람끼리 부딪혀서 하는 단체 활동의 성격이 짙다 보니까, 소극적이나 내성적인 사람은 조금 힘들죠. 그리고 제가 워낙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공연예술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5년 말 한화 리조트(당시 한화 국토개발)에 입사하게 되었는데요. 괌이나 싸이판의 PIC호텔을 벤치마킹 해 우리나라 최초로 엔터테인리조트를 기획하는 일을 했습니다. 다양한 공연이나 리조트 회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개발하는 P.O.(Program Organizer)로 활동했는데요. ‘고객의 문화생활에 대한 Needs를 찾고, 즐길 거리를 만들어보자’ 라는 취지로 시작했습니다.
한화에서 일했던 시절 기억나는 일이 있나요?
아이들을 데려온 고객들의 경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놀지, 어른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놀지, 난감해 하시는 상황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키즈 클럽’이라는 아이들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어른들이 휴가를 즐기는 동안 아이들을 위해서 이런 저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죠. 막대풍선 만들기 라던가, 마술교실과 같이 아이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활동들을 준비했어요. 어른들을 위해서는 요가교실과 당시 유행하는 댄스수업도 진행했지요. 굉장히 반응이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처음엔 행사 기획으로 시작을 하신 거네요. 지금 하시는 일과는 어떤 부분이 다른 건가요?
이전 일이 문화마케팅 분야였다면 지금은 전문적인 Performing Arts지요.
언제 공연예술로 직무를 바꾸신 건가요?
사실 제가 겁이 없고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요. 2008년도 1월에 한화를 과감히 퇴사하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함과 동시에 연기, 댄스, 노래 같은 것들을 직접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무대에 서보기도 했고요. 공연예술을 다양하게 소화 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까, 일단 이것저것 경험을 해 보고자 했던 것이죠. 해봐야 답이 나올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뛰어들어서 배우다가, 오디션도 보고 하다가 대학로 뮤지컬도 나가고 연극도 해보게 됐어요.
공연예술 분야에 대해 점점 시야를 넓혀 가고 있다가, 지인을 통해서 기획실장으로 소극장 오페라를 제작하는 사회적기업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크진 않았는데, 처음 시작할 때는 연습실 페인트칠, 바닥공사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강남에 전용관까지 생긴 잘 된 곳이죠. 그 때부터 공연기획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거죠.
리조트의 P.O.로 계시다가 생각이 약간 바뀌신 거잖아요? 그 이유가 궁금해요.
직접 공연 예술의 중심에 서고자, 대학로와 같은 공연의 심장부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쪽 분야로 오게 된거죠. 물론 한화리조트에서도 문화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무대를 기획하고 관객과 호흡을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 때는 회원들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공연예술은 예술성이 담보가 되어야 하고 그 블랙박스 안, 공연장을 찾아준 사람들만을 위해서 공연을 하는 것이잖아요. 배우로서의 마인드, 관객들의 마인드도 다르겠죠. 시각을 달리해서 진지하게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안정적인걸 포기하신 거잖아요. 고민이 많이 되셨을 것 같아요.
아니요. 고민 전혀 안 했어요.
너무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고민은 없었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수 있을까 이런 고민은 했지만, 후회는 없었죠.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몰두하느라 바빴거든요.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고민은 있을지언정 안정적인 것을 버렸다는 후회는 정말 전혀 없었어요.
공연예술로 직무를 바꾸시고 굉장히 다방면으로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아요.(웃음) 프랑스의 연극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에서도 일했었는데요. 큰 회사가 아니었던 터라 연출도 해야 하고, 기획, 홍보, 프랑스어 희곡번역, 연기지도의 모든 역할을 다 했었습니다. 가끔 배우로 무대에 서기도 했었어요. 사실 이 업계에서는 다양하게 잘 해야 하거든요. 영세한 곳에서는 멀티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해내야 하니까.
△ 박은하 멘토님. 이탈리아 아티스트들과 함께
조금 늦게 뛰어 드신 경우이신데요. 동년배의 다른 분들에 비해서 많이 늦으신 건가요?
글쎄요. 저보다 더 늦게 시작한 사람도 분명 있을 거고 심지어 아직 시작도 안 한 사람도 있을 거에요. 제 인터뷰를 보고 마음을 먹으신 분들도 있을 수 있는 거고요.(웃음)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바로 일에 뛰어든 사람과 비교했을 때는 저는 10년 정도 늦었다고 할 수 도 있는 거죠. 그렇지만 제가 바닥에서부터 쌓았던 경험을 잘 승화시켜서 단기간에 올바른 방향으로 제 자신을 끌어올린다면 좋은 결과로 갈 수 있는 길이 또 있지 않을까요?
일반적으로는 공연 기획을 전문적으로 배워서 뛰어드는 경우가 많나요?
당연히 더 많죠. 저는 독특한 케이스고요. 요즘에는 사설 학원도 많이 있고 문화재단이나 공연장에 관련된 과정도 굉장히 많아요. 공연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서 재단 쪽에서도 많이 운영 하죠. 배우를 양성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어려운 과정이에요. 수업료도 비싸고. 대학원에는 공연예술과정도 있고요. 코스를 밟으신 분 들이 공연기획 쪽으로 많이 오시는 편이죠.
멘토님의 경우 비전공자라서 힘들었던 점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제가 이쪽 분야에 멘토가 없었어요. 전공자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처음에 시작할 때 조금 힘들었었죠. 그런데 또 저는 저 나름대로의 희소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비 전공자이니까 오히려 더 독특하게 봐주시고 픽업해주시는 제작자, 연출자분들도 계셨거든요.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것 같다는 것이죠. 또 운도 좋았던 것 같아요. 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제가 깨달은 것이, 정말 뼈를 깎는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바로 도태된다는 것이죠. 정말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에요.
멘토님이 생각하시는 공연예술분야의 매력은 뭔가요? 어떤 매력 때문에 이 분야에 그렇게 끌리셨는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이 분야에 계신 분들은 아마 십중팔구는 다 이 말씀을 하실 거에요. 무대 뒤에서 준비할 때 느껴지는 두근거림, 무대 위에 서는 배우들이 느끼는 관객들의 시선, 공연 중간의 정적이나 긴장감 같은 것들. 그리고 무대가 끝나고 마지막 커튼콜 할 때 모든 힘들었던 감정들은 사라지고 보상받는 기쁨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다들 ‘마약’ 이라고 표현 하더라고요. 이 느낌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이걸로 인해서 힘들었던 점을 한번에 잊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기거든요. 기획이든, 연출이든, 배우든 다 같을 거에요. “공연 잘 봤다.” 이 한마디가 살아가는 힘이 되거든요. 힘들 때는 다음작품 기대해주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것들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기획자의 성향에 따라 공연의 느낌들이 달라지잖아요. 멘토님은 어떤 공연을 만들고 싶으세요?
공연 계에서 색다른 시도를 하는 공연들이 종종 있어요. ‘위키드’ 나 ‘라이온킹’ 같이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꾼 그런 공연을 좋아하거든요. ‘스위니토드’도 그런 경우고.
제가 이런 컨셉을 굉장히 좋아해요. 새로운 성향의 공연을 기획해 보고 싶어요. ‘손드하임’이 만들어 낸 것처럼 독특한 분위기의 공연들을 기획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한국만의 고유한 것을 컨텐츠화해서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리는 공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리포터 설명 : ‘스티븐 조슈아 손드하임’은 대표적인 미국의 작곡/작사가로, 그의 뮤지컬에 대한 영향력은 현대 브로드웨이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작곡과 작사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스위니토드’, ‘조지와 함께 일요일 공원에서’, ‘숲 속으로’, 등이 있다. 그는 또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집시>>의 가사를 썼다.)
요즘은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는 여러 방면에서 폭넓게 공부를 했다면, 지금은 공연기획이라는 분야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해서 치고 올라가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글로벌 역량이 중요하기 필요하기 때문에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하고 있지요. 하나도 빠짐없이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외국어가 공연기획 분야예서 얼마나 중요한가요?
한국 내에서만 있어도 외국어는 필수입니다. 한류열풍이 뮤지컬이나 연극 쪽에서도 많이 불고 있거든요. 중국에도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합자법인을 통해 공연을 현지에서 공동제작하고 있고, 일본에서도 한국뮤지컬이 1년내내 공연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도 공연 관련 투자가 계속 진행 중에 있고요.
현재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거의 포화상태 입니다. 한국 내에서는 한계가 있으니까 좋은 공연은 들여오거나 수출하지요. 그래서 언어도 하나의 경쟁력입니다. 예전에 마카오 베네시안 호텔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요. 그 때 캐나다나 미국, 영국 친구들과 어울리게 됐어요. 그 때 캐나다나 미국,영국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그들이 중국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며 중국어 공부에 많은 힘을 쏟고 있더군요. 중국은 빠른 시일 안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글로벌마켓을 위협하는 큰 시장이 되어 있을 거에요.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중국과 가깝고, 여러 가지 전후 상황으로 봤을 때 더욱 더 중요하겠죠.
주변 상황 때문에 자신이 가진 꿈을 포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또 그 중에는 나중에라도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는 분들도 종종 있고요.
저도 그런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들 중에 한 명으로서 말씀 드리자면, 자기가 이 일을 하지 않아서 죽을 것 같으면 분명히 그 사람은 그 일을 언젠가는 하게 되어 있어요. 하고 싶은데도 주변의 만류나 기대심리 때문에 다른걸 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정말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죠. 그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거라 생각해요.
△ 박은하 멘토님(왼쪽). 마카오 샌즈호텔 공연장에서 어린이 출연자와 함께
제가 이 일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중에 하나를 말씀 드리자면, 내가 만약에 오늘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무엇을 가장 후회할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저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못해서 그걸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하자는 생각에, 나이가 서른이건 마흔이건 상관없다 생각하고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문화가 산업이 되고 있잖아요. 그래서 공공의 기능을 많이 띄고 있는데, 실버 합창단, 뮤지컬단, 연극단 이런 것도 있고요. 어느 지역에는 기획단계부터 시민들이 직접 하는 뮤지컬을 하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기획, 음악, 연기, 연출까지 아마추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는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사회적으로 이런 것들을 접할 기회가 많으니까 조금 더 접해보시면서 아마추어로만 하기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도전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정말 하고 싶다면, 30만원을 버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이라 행복한 것과 300만원을 버는데 하고 싶은 일을 못해서 불행한 경우를 비교해 보라는 거에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한 달에 30만원을 벌어도 살 수 있거든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내가 정말 이 일을 사랑하는가 열정의 크기를 생각해보시면 답을 내리기 쉬울 거에요.
공연예술분야에서 또 중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요?
인맥도 많이 중요한 편이거든요. 사람끼리 하는 일이라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중요하고요. 제가 사실 개인주의적인 면이 조금 있었던 편인데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달라졌어요. 팀원들하고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는 거잖아요. 일반 직장인들과 비교해 봤을 때 더 많이 부딪히고 하루에 10시간 이상 씩 부대끼면서 같이 호흡하지요. 공연이라는게 대본에 주어진 것만 가지고 하는 건 앵무새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숨겨진 서브텍스트까지 이해를 해야 하고, 협업하는 사람들과 인간적인 소통이 되지 않으면 크리에이티브 작업이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만드는 사람들끼리 불편하다면 보는 사람들도 불편을 느끼게 되어 있어요.
연출, 음악감독, 무대감독, 기획스텝, 배우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끈끈하게 뭉쳐져서 일을 해야 하니까 팀워크가 많이 중요해요. 같이 일을 했던 사람들이 다음 작업 때 또 같이 일하는 경우가 있는데 팀워크 덕분에 아무래도 더 잘 맞고 시너지효과가 나는 거죠.
△ 박은하 멘토님(오른쪽). 공연장에서 스텝들과 함께.
멘토님이 생각하는 기획이란 뭔가요?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 소홍삼이라는 분이 저술하신 무대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기획이 예술이다’ 라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기획을 하느냐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되는 것이거든요. 10년 정도 전쯤 에 잠실운동장 규모에서 오페라를 한 적이 있었어요. 처음에 굉장히 성공을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 성공을 모방하기만 한 사람들은 실패를 맛봤던 사례가 있었죠.
공연 예술에는 다양한 요소가 많은데 그것들을 모두 충분히 고려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2009년도에 신종플루가 유행 했었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은 가지 않게 되었었고요. 그래서 공연장이 잘 안 되던 시기가 있었어요.
기획 과정에 여러 가지 요소가 포함되네요. 공연예술을 기획하기 위해서는 또 어떤 역량이 중요한지 말씀해 주세요.
이런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획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런 것을 잘 봐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에 대한 통찰력도 필요하고요. 대중이 좋아하고 유행하는 것만 쫓아가기 보다는 시대를 반 발 정도 앞서갈 수 있는 감각, 그리고 공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차가운 이성으로 기획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상상하며 창작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작품의 예술성과 대중적 흥행성에 있어서 균형감을 갖는 것도 중요하구요.
정치외교학과에서 공부 하셨던 내용이 시너지를 불러 오는 것 같아요.
모든 부분이 정치와 연관이 안 되는 것도 없지요. 그리고 제가 정치외교학과 함께 의상학과를 복수전공을 했었어요. 그것도 예술의 한 분야잖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달리듯이 오신 것 같은데요. 슬럼프도 분명 있었을거라 생각해요. 슬럼프를 이겨내는 멘토님 만의 비결은 어떤 것인가요?
중간에 일을 쉬는 기간이 있었어요. 특히 배우를 할 때는 공연이 없을 때의 공허감이 조금 힘들었죠. 금전적인 부분도 있었고요. 그럴 때에는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합니다.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잘 붙잡아 두어야 하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면 잡생각이 없어지는 편이에요. 그래서 춤을 좀 많이 췄죠. 재즈댄스나 발레도 하고요. 요즘은 방송댄스도 재미있더라구요(웃음)
공연기획분야에서의 멘토나 롤 모델 같은 분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제가 존경하는 연출가분이 계신데, 작품도 잘 하시지만 삶의 모습이 굉장히 자유로우신 분입니다. 그 분께 처음 연기를 배웠었어요. 이 인터뷰를 보시면 좋아하실까 모르겠어요.(웃음) 한예종 1회 졸업생이시고 지금 뮤지컬 헤븐에서 ‘넥스트 투 노멀’ 연출도 하고 계세요. ‘변정주’라는 분이신데요. SNS계에서도 상당히 영향력 있으신 분입니다. 그 분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실히 있기 때문에 신문을 안 봐도 그 분 SNS를 통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 정도에요. 그런 부분들이 저에게는 부럽고요. 제가 연기를 배울 때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모두 다 내려놓아야 예술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어요. 삶의 작은 단면에서조차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분이시죠. 지금도 연락 하고 지내요. ‘넥스트 투 노멀’ 보러 오라고 하시죠.(웃음)
알고 지내신 지 꽤 되셨을 것 같은데요. 맨 처음과 지금 비교해 봤을 때 느끼시는게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제가 변정주 멘토님으로부터 배운 것 중 하나가 항상 처음 하는 것처럼 하라는 거에요. 내가 지금이 처음 공연에 임하는 순간인 것처럼 말이죠. 제가 배우생활을 해보니까 깨달은 것이 있는데, 똑같은 공연을 100번, 200번 할 수는 있지만 항상 처음 해 보는 것 처럼 새로운 공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 박은하 멘토님. ‘태양의 서커스’ 배우들로부터 받은 사인 포스터를 들고.
요새 해외 공연을 들여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 부분에서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장 중요한 건 로컬라이징이라고 생각해요. 현지화에요. 한국인의 정서에 맞도록 바꿔주는 것이죠. 우리나라 공연을 해외로 수출할 때도 물론 중요하고요. 이런 것도 기획 역량 중에 하나에요.
인터뷰를 하다 보니 멘토님이 얼마나 꿈을 향해 노력하는지 느껴지는데요. 멘토님은 10년 뒤에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제가 이 분야에서 5년을 있었는데 10년을 더 있게 된다면 10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한 것이겠네요.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쪽에서 일하고 싶은 큰 꿈이 있고요. 거기서 계속 일 할 수 있다면 정말 큰 영광이겠지만 그 곳에서 저의 커리어를 쌓고 나서, 한국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방향이 생기게 되잖아요?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나라 공연예술 경영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요. 기획자로서 저만의 라인을 구축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죠.
마지막으로 같은 청춘으로써 젊은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 드립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한마디로 ‘카르페 디엠’이에요. 사실 요새 젊은 친구들이 많이 힘들잖아요. 좌절하는 사람도 많고,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도 많고요. 사회적으로 많이 침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현재를 열심히 살지 않고 즐기지 않으면 미래가 없거든요. 지금 현재는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에 대한 답안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걸 너무 비관하지는 말고 지금 열심히 살면 앞으로의 미래가 펼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을 미래를 위한 연습장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면 좋을 것 같아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임두리
출판.편집 디자인
담당부서:인터뷰
취재:강용연, 임두리
INTERVIEW
임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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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임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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