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눔을 실천하시는 헌혈 홍보위원이시기도 하시죠?(웃음) 이번 회사 사보에도 멘토님의 봉사활동 이야기가 실린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내에서도 봉사활동 동호회 활동을 하고 계시던데요, 어떻게 그렇게 바쁘신 가운데도 ‘나눔’을 실천하실 생각을 하셨나요?
나눔을 시작한 지는 2005년부터예요.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지요?(웃음) 그 전에는 나눔의 ‘나’ 자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리비아에서 근무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지요.
저희 집에는 아픈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병원비가 많이 드는데, 그것 때문에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리비아에 갔었어요. 그 때 거기서 2년간 살면서 외국인 노동자 300명과 함께 생활을 했었는데, 그 사람들을 보니깐 제가 오히려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사람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불 ~ 3,000불 정도 밖에 안됐거든요. 병원비가 1억원씩 나가도 벌 수 있는 게 어디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가 당장 내일 눈을 못 뜰 수도 있는 게 인생이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죽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 ‘저 사람은 다른 사람은 한 번도 둘러보지 않고 죽었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 안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나눔’을 하는 삶을 살자라고 생각한 거지요.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닌데 부끄럽네요. 요즘 많이 하시잖아요. 저희 사원들을 봐도 그렇고,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 젊은 사원들은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많이 참여하려는 분위기에요.
제가 막연히 ‘나눔’이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어떤 나눔을 하고 계신지 궁금해 하실 것 같아요. 지금하고 계신 나눔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돈을 나눠 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요. 제가 필요한 곳에 가서 봉사하고, 청소도 하는 거지요. 돈은 많이 없으니깐, 몸으로라도 나누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웃음치료도 배웠지요. 웃음치료를 하면 사람들이 더 많이 웃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웃음을 나눈다고 할까요?(웃음)
나눔의 활동의 일환으로 헌혈 홍보위원으로도 활동하고 계신 거군요?
네, 나눔을 시작하면서 헌혈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78회 헌혈을 했지요. 대부분 2005년도 이 후부터 시작한 거예요. 2004년까지는 한 번 정도했나?(웃음) 어쨌든 그렇게 헌혈을 시작하고 열심히 하다 보니깐 홍보위원까지 하게 됐어요.
홍보위원이면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말 그대로 홍보하는 거예요. 전 연예인은 아니니깐 방송이나 홍보 포스터 같은 데 나오지는 않지만, 토요일과 일요일 길거리에서 헌혈을 홍보하지요. 연예인분들이 하는 일을 ‘홍보대사’라고 해요.
가족 중에 편찮으신 분이 많다고 하셨는데 헌혈을 시작하신 계기도 이것과 관련이 있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간혹 헌혈증이 필요해서 헌혈을 시작하지 않았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헌혈증보다는 돈이 더 필요한 것이 냉정한 현실이에요. 병원비보다는 부가적인 비용이 더 많이 드니까요. 예를 들면 우리는 라면을 먹고 살 수 있지만, 아픈 사람은 소고기 먹어야 되고, 우리는 걸어갈 수 있지만, 아픈 사람은 택시를 타야 하니까요. 물론 집에 가만히 있으면 이런 돈도 아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저축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제가 조금이라도 번 돈으로 저희 가족들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면 그게 제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삶의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가족이 멘토님의 삶에 열정을 주는 원동력일 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희망인 거네요?
그렇지요. 희귀병이라서 대학병원에서도 포기한 저희 누나와 동생이 아직 살아있고, 96년도에 암에 걸린 어머니도 아직 살아계시고, 치매 때문에 돌아 가신다던 할머니도 아직 살아계세요. 살아있어 줘서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제 가족이 살아있다는 것이 고맙고 행복합니다. 만약 저희 가족이 아프지 않았다면 저도 이런 것을 느낄 수 없었을 거예요. 건강한 사람에게 살아있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요? 당연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요. 하지만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 당연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게 사람들이 일을 하려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니까요. 일을 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가족을 보살피는 일, 그것보다 중요한 이유도 없지요.
회사 대내외적으로 강의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어요. 멘토님만의 특별한 자기소개가 있지 않으신가요?
네, 있어요. ‘4가구 사는 산골마을에 태어나서, 4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도 대한민국에서 열정 하나는 최고로 살고 있는 김창수입니다.’ 라고 소개해요.
멘토님이 살아오신 고난과 삶의 열정이 정말 잘 느껴지는 자기소개네요. 그러한 역경을 이겨내고 가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기에 멘토님이 더욱 빛나시는 것 같습니다. 이런 멘토님의 삶을 반영하셔서 첫 번째로 출간하신 책 제목을 ‘운명보다 강한 열정’이라고 정하신 건가요?
네, 맞아요. 저 같이 자신의 운명을 강한 열정으로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책이에요.
그 책을 비롯해서, ‘10년의 기다림’이란 책도 쓰시고 이번에는 “보리밭 인생”이라는 책까지 출간하셨어요. 태어나서 보통 사람이 한 권의 책을 내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벌써 3권이나 쓰셨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게다가 발간하신 책이 모두 전공하셨던 토목이나 건설과 관련된 책이 아닌 수필집이에요. 이렇게 책을 쓰시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잘난 인생은 아니지만 제 이야기를 사람들이 읽고 삶의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 책의 소제목을 보면, 그 제목에 맞는 에피소드를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찾을 수 있거든요.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제가 조금 더 글을 잘 쓰게 되고, 인정을 받으면 ‘김창수의 책 쓰기 교실’을 해보고 싶어요. 소주제로 본인들의 삶의 에피소드를 쓰고, 그러한 글을 모아서 책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그런 일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책으로 한 권씩 낼 수 있도록 돕는 다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만으로도 뿌듯해집니다.
회사와 가족, 두 가지 모두에 충실하시기에도 힘드셨을 것 같은데, 책까지 쓰시려면 정말 힘드시겠어요.
힘들죠. 그래도 세 가지 모두 제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제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회사 덕분에 저는 제 가족을 지킬 수 있었고, 제가 ‘10년의 기다림’이란 책을 쓰게 된 것은 동생 덕분이잖아요. 그리고 그 덕분에 TV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모든 것이 조화가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니까요. 제가 앞으로 더 잘 된다면, 이 3가지가 삶의 근간을 이뤄 잘 될 거예요. 회사 생활, 가족, 글쓰기, 모두 힘든 때도 있었지만 제 삶은 힘겨운 어제가 있었기에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웃음)
멘토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건설회사 직원의 강한 이미지와는 잘 맞지 않으신 것 같아요. 감성적인 이미지가 느껴진다고 할까요?(웃음) 어떻게 건설회사에서 일하게 되셨나요?
원래는 고고학에 관심이 있었어요. 안 어울리나요?(웃음) 그런데 배고프면 일을 해야 먹고 살잖아요? 아마도 고고학자가 됐으면 굶어 죽었을 거예요. 이집트 가겠다고 집 팔고 그랬어 봐요.(웃음) 그런 쪽으로는 빨리 철이 들었던 것 같아요. 집에 아픈 사람이 많은데 돈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건설업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저희 시대에는 속된 말로 ‘노가다하면 돈 많이 번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택한 것이 토목 공학과이지요. 그래도 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이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를 하고 싶었고 지금 그 일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현재는 강의가 멘토님의 주된 업무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 멘토님이 하고 계신 업무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제가 대우건설에서 16년을 일했는데, 7년 동안은 현장에서 일했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9년 동안은 사내강의를 주로 맡아서 하고 있어요. 품질경영팀에 속해서, 대우건설 전 직원들에게 ISO, 품질경영, 건설기술관리법 관련 교육을 하는 거지요. 9년 동안이나 전국의 현장을 찾아 다니면서 교육을 했으니깐, 어쩌면 저희 직원들에게 제가 저희 회사 대표님 다음으로 유명할 수도 있겠네요. 그 만큼 많이 돌아다녔고, 직원들도 많이 만났어요.
△ 강의 중이신 멘토 김창수님. 현재 대우건설에서 ISO, 품질경영, 건설기술관리법 관련 교육을 담당하고 계신다.
어떻게 보면 현장의 엔지니어에서 본사의 매니저로 직무가 바뀌신 거네요? 그렇게 직무를 바꾸신 계기가 있나요?
국내외 건설 현장에서 토목 기술자로 7년을 근무했어요. 그리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깐 공부가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야간 대학원을 가자고 결심했어요. 그러려면 본사에 있어야 했고, 그 때 겨우 자리가 비는 부서가 품질경영팀이었지요. 자리가 비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그 팀으로 지원해서 가게 됐지요.
멘토님께서는 엔지니어였지만 서비스 마인드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회사 내에서 사회봉사 동아리도 처음으로 운영하셨다고 하던데요?
특별히 계획을 가지고 했던 일은 아니었어요. 그냥 한 일인데 운이 좋아서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났지요. 지금 대표님과의 인연도 그 때 만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멘토님의 책에 보면 대표님의 추천사가 들어있는 거군요?
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파트가 정말 잘 팔렸어요. 당시만 해도 아파트를 사놓으면, 가격이 오르니깐 수요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건설회사들이 고객서비스에 대한 마인드는 제조업에 비해 다소 부족했어요. 그런데 제가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니깐 대표님이 보시기에 엔지니어지만 서비스 마인드가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강의를 하시게 된 계기도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어떤 계기로 강의를 하게 되셨나요?
목소리가 커서 강의를 맡게 됐어요.(웃음) 당시 저희 팀에서 주관하는 교육이 있었거든요. 평소에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제 목소리가 다소 컸는지, 제 목소리가 크다고 그 교육을 저에게 맡기시더라고요. 그런데 진짜로 목소리가 크니까 사람들이 안 졸았어요. 그 때부터 강의를 하기 시작했지요. 특별히 교육업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에요. 주어진 현실을 열심히 하다가 보니깐 이렇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지금은 강의하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깐 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할까요?
강의를 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있었지요. 강의를 하면서 기존에 없던 교육을 만들어서 하기도 했거든요. 그러니깐 주변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일단 하고 나니깐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제가 3개월만 해보고 설문을 해서 평가 점수가 70점 이하면 안 하겠다고 했었는데, 다행이지요. 계속 강의를 할 수 있게 됐잖아요. 제 목소리가 크기도 하고, 솔직히 직무교육만 하면 정말 재미없는데, 제가 재미있게 강의도 준비하니깐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자발적으로 하시는 일이 많으신 것 같아요. 사회봉사활동도 그렇고, 교육도 그렇고요. 그런데 그렇게 자발적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항상 좋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사실, 회사에서 힘든 일도 많았지요. 제 사정을 알기 전에는 사람들이 저를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했어요. 저희 집안 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0년의 기다림’ 이 나오면서부터니까요. 이 책이 나온 후에야 제가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더 밝아 보이려고 해요. 모임에 가면 정말 활발한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하고 단 둘이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 눈물 나는 삶을 살고 있어요. 정말 힘들지만, 그렇게 힘든 삶 말고 또 다른 행복한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일부러 더 밝아 보이려 하는 거예요. 저 또한 그랬지요.
그럼 그러한 시선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그런 시선을 신경 쓸 여유도 없었어요. 가족들은 아프고, 생활비 때문에 힘든데 그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요. 그냥 열심히 살다 보니깐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아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일을 한다는 건 나쁜 게 아니잖아요?(웃음)
자신의 상황을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렇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한테 섭섭하면 왠지 그 회사에 대한 섭섭함도 생기잖아요? 일하시면서 직장에 대한 아쉬움은 없으셨나요?
전혀 없어요. 오히려 감사하지요. 저는 누군가 당신이 오늘 날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제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제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대답해요. 제가 지금 받고 있는 돈이 절대 작은 돈이 아니거든요. 물론 저희 집 생활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부족해 보일 수 는 있겠지만요. 하지만 이 회사가 없었으면 저를 비롯해서 저희 가족들은 더 힘들었을 거예요. 저는 제 직장, 대우건설을 정말 사랑합니다.
멘토님의 직장에 대한 사랑은 저희 젊은이들이 꼭 배워야 할 것 같네요. 혹시 지금 하고 계신 일에 대한 목표가 있으시다면?
품질관리자를 위한 법정교육을 만들고 싶습니다. 건설업 쪽에는 안전관리자와 품질관리자가 있는데요. 안전관리자는 이미 법정교육이 있어요. 1년에 정해진 시간을 교육받지 않으면 벌금이 부가되지요. 그런데 아직 품질관리자는 법정교육이 없어요. 이것을 올해 안에 만들려고 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서 대우건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품질관리자의 품질관리 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 제 직무상 목표예요. 규모가 크지요? 제가 또 통이 큰 사람입니다.(웃음) 사실 제가 본사에 있으면서 건설기술관리법을 계속 교육하다 보니까, 국토교통부 자문위원으로 등록이 돼있어요. 관련 법 개정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항상 참여해왔기 때문에 이런 꿈도 꿀 수 있는 것 같아요.
취업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임원의 자리를 목표로 하잖아요? 경제적 안정과 풍족한 삶을 위해서도 그렇고, 사회적 명예를 위해서도 그렇고요. 그런 의미에서 멘토님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정말 부러운 대상이 되실 것 같아요. 실제로 어떠신가요? 부서의 신입사원들이 이런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해주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지 않나요?
삶의 무게는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중소기업에 근무하면서 일년에 가족을 위한 병원비가 3,000만원~5,000만원 발생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정말 삶이 어렵겠지요? 저는 대기업 건설회사 차장이지만 일년에 드는 병원비가 1억원이 넘어요. 제 연봉을 훨씬 넘지요. 그래서 저도 비슷하게 힘들게 살아요. 그래서 삶의 무게는 어느 정도 같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그 삶을 어떻게 받아 드리냐 인 것 같아요. 어느 위치에서도 최선을 다해서 순간에 집중하고, 의미를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 선배로서 요즘 신입사원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정말 똑똑한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TOEIC도 다 900점이 넘고,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좋은 대학에, 잘 생기기까지 했어요. 진짜 다 수술한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조금 안타까워요. 우리 때와 비교하면 정말 유능한 직원들이 들어온 것은 맞는 것 같은데, 너무 조급해 하거든요. 뭔가 빨리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래서 조금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지방대 나왔지만 차장 3년 차에요. 그렇게 진급이 느리지 않거든요? 이것도 운 같아요. 여유를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 똑똑하고 능력이 있으니깐 급하게 뭔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나중에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면 직장 생활하기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신입사원들이나 사회 초년생들이 어떤 마음으로 회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좋을까요?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얘기했듯이 다들 똑똑한데다가, 마음까지 급하니깐 주변의 이야기를 잘 안 들으려고 해요.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하지요. 너도 나도 자기 의견만 이야기하면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때로는 저 사람을 따라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함께 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먼저 경험한 선배들과 일을 할 때면 특히 그런 것이 중요하지요. 물론 자신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지만, 경험이 있는 선배들에게도 분명히 배울 것이 있거든요.
보다 나은 조직을 위해서 서로 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신가요?
네, 그렇지요. 3%의 소수가 조직을 이끌어 간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나머지 97%도 함께 움직여야 조직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깐 조직을 이끄는 소수가 돼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지 말고, 다수가 함께 조직을 이끌어간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면 조직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인생의 멘토로서 이 시대의 젊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다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삶을 힘들게 할 지라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것 때문에 자신의 인생의 99%가 힘들다고 해도, 1%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은 그 1%를 기억하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100일 중 99일이 힘들어도 행복한 하루를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제 가족이 제 인생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살아가는 이유도,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도 가족 덕분이에요. 여러분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취업이 아무리 어렵고, 회사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노력한다면 반드시 원하는 취업을 이루실 수 있을 것이고, 사회에서 자신의 목표를 이루실 수 있으실 거예요. 그날을 기다리며 모두들 힘내시길 바랄게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강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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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김정현, 강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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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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