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직 도슨트가 낯선 독자들도 많을 것 같아요. 도슨트라는 직업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도슨트는 박물관, 유적,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을 안내하는 사람입니다. 문화예술 전반을 공부하여 관람객이 알기 쉽게 작품을 설명하고 같이 감상하는 역할을 하죠. 도슨트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가르치다’라는 뜻이에요. 19세기 중반, 런던의 브리티쉬 뮤지엄에서 최초로 도슨트 제도가 운영되었죠. 처음엔 무료 자원봉사의 성격이 강했지만 요즘은 점차 유료화 되면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친구들이 꿈꾸는 자리가 되었죠.
△ 누구보다 쉽고 재미있게 예술을 설명하는 멘토
도슨트를 시작하게 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삼성전자에서 연구원으로 오랜 기간 근무하다 작은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2003년 로마에서 여행업을 하던 지인의 권유로 현지 관광가이드를 시작했죠. 업종자체가 낯설고 생소한데다 처음 가보는 도시라 힘들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어요. 역시 생각한 것처럼 만만치 않았어요. 그래도 회사 조직생활이나 사업 스트레스 보다는 훨씬 나았죠. 일이라기 보다는 ‘놀이’라고 생각할 만큼 좋았거든요. 회사에서는 일 잘했다고 누가 박수 쳐주고 그러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도슨트는 해설 잘 하면 매일 관객들에게 박수 받고 환호 받아요. 평생 어떤 일을 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박수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이게 딱 이다 싶었죠. 게다가 돈도 잘 벌었으니. (웃음)
클래식 콘서트와 미술해설을 접목시킨 아르츠콘서트의 콘서트마스터로도 활동 중이시죠? 아르츠콘서트와 콘서트마스터에 대해 설명해주신다면?
아르츠콘서트는 미술과 음악의 접점을 찾아내는 것이에요. 클래식 콘서트에서 미술, 음악, 건축, 당대의 역사, 문화사, 여행까지 결합시킨 복합 문화 콘서트죠. 콘서트마스터는 미술작품이나 건축물을 관객에게 설명하고, 작품과 관련된 연주곡을 소개해요. 그 다음엔 연주자들이 직접 나와서 클래식을 연주하죠. 모든 과정을 직접 기획해서 프로그램을 짜고, 공연 진행까지 맡고 있습니다.
△ 미술, 음악과 만나다. 아르츠콘서트
멘토만의 차별화된 강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연구원 생활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분류, 정리하고 학습하는 게 몸에 배어 있어 큰 도움이 됐어요. 미술사 공부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미술사 공부를 공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거예요. 공부였다면 하기 싫었을 거예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외운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세미나, PPT 보고를 통해 터득했어요. 또한 회사생활에서 철저하게 사실적인 자료, 근거를 제시하며 객관적으로 설명했던 습관이 큰 도움이 됐죠. 예를 들면, 관객들에게 “이 작품은 강렬한 명암이 특징”이라고 설명할 때는 정반대의 작품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해줬어요. 실제적이고 직관적인 설명들이 저만의 강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 도록을 보여주며 작품을 설명하는 멘토
평소 일과가 궁금합니다.
공연, 강연, 특강, 아카데미수업, 해외문화탐방과 같은 공식 일정을 제외한 시간에는 문화사, 미술사, 음악사, 역사 등을 공부해요. 삶과 일이 완전히 일치하죠. 무엇보다 이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림을 그냥 보면 된다고 생각하는 관람객들도 많은 것 같아요. 도슨트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림은 그저 ‘보는 게’ 아니라 ‘감상’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감상법도 시대에 따라서 다르죠. 19세기 이전의 그림이나 조각은 궁정의 이야기, 성서, 신화, 역사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때문에 이 시대의 작품은 본다고 이해할 수 없어요. 그림 안에 닮긴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을 ‘읽어’야 해요. 그러니 도슨트가 필요하죠.
하지만 19세기 인상파 이후로는 ‘읽는’그림이 아닌 ‘보는’그림으로 바뀌어요. 인상파는 눈에 비치는 순간의 인상을 그렸기 때문이죠. 작품 내면에는 어떠한 스토리도 없어요. 그들의 그림은 그저 ‘보면’ 되는 거죠. 물론 도슨트가 있다면 더 자세히 볼 수 있겠죠.
말씀을 듣고 나니 도슨트와 함께 작품을 감상해보고 싶어지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잠깐 설명해주신다면?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 서약식], 한스 홀바인 [대사들], 에드와드 마네 [올랭피아] 그리고 피테르 브뢰헬 [베들레헴의 영아 학살], [베들레헴의 인구조사],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좋아해요. 이 시대 대부분의 작품에는 중심 주제가 있어요. 피테르 브뢰헬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에는 십자가를 지는 예수가 500여명의 등장 인물 중에서 아주 작게 그려져 있어요. 왜 그렇게 그렸을까요? 역사를 바꾸는 극적인 사건도 조용한 일상 속에서 슬며시 일어난다는 거죠. 그 당시 사람들에게 예수의 죽음은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어요. 작품을 보면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몬을 부인이 붙들어 잡는 모습이 있어요. 놀라운 건 그림 속 사람들이 예수 아닌 시몬에게 더 많은 눈길을 주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왼쪽 상단에 거대한 풍차가 보이나요? 과거 풍차는 밀을 생산하는 곳이었어요. 때문에 풍차는 예수의 몸을 상징해요. 반대로 오른쪽 상단에는 그 당시 고문 도구가 그려져 있죠.
자, 이 그림 안에 이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저 보기만 해가지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웃음)
△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1564년
주로 국외 작품만 많이 다루시는 것 같은데, 좋아하는 국내 작품은 없으신지?
김홍도의 풍속화 좋아해요. 그래서 가끔 서양화와 풍속화 비교도 하죠. 올해 7월에 이화여대에서 한독수교 130주년 기념 공연을 진행해요. 그때 독일회화와 한국회화를 비교할 생각이에요. 예를 들자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penseur)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비교하는 거죠. 두 작품이 제목도 같고 포즈도 유사해요. 하나는 생각, 하나는 사유를 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동서양의 생각과 사유의 차이에 관한 철학을 얘기할 수도 있겠죠. 어때요? 재미있겠죠? (웃음)
△ 왼쪽 [생각하는 사람], 오른쪽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
없어요. 문화예술에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죠? 문화예술은 즐기고 향유하는 거잖아요. 이건 밥 먹으면서 성질 내는 것과 같아요. (웃음) 식사는 즐거운 일인데 왜 화를 내요? 마찬가지로 이 일은 화내고 짜증낼 일이 아니에요. 나도 즐겁고 나와 함께하는 모든 사람이 즐거워야 되는 일이죠. 세상에 스트레스 받고 힘든 일이 참 많은데 이런 일 마저 힘들면 안되죠. 이런 일은 즐거워야 해요.
아직 우리나라엔 외국에 비해 문화예술에 관한 인프라가 부족한데, 이런 현실에서 멘토가 해나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예술에 대한 경외감 혹은 예술은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이 여전한 듯해요. 그런 사람들이 ‘예술은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에요. 김경민(인터뷰어)씨도 오늘 인터뷰를 계기로 그림들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지 않겠어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았는데, ‘그림이 좀 재밌다’고 생각하게 됐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몇 천명 앞에서 하는 것. ‘예술은 어렵지 않다’는 걸 널리 알리는 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드라마만 재미있는 게 아니에요. 예술도 참 재미있어요.
어떻게 하면 도슨트가 될 수 있을까요? 도슨트 전문양성과정이 따로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도슨트 전문양성 프로그램 중 과정 이수가 일자리로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세요. 사실 도슨트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본래 자원봉사로 하던 일이기도 하니까요. 언제든 도전해보세요.
도슨트가 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전달력이에요. 제아무리 뛰어난 학위,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재미가 없으면 다 도망갑니다. (웃음) 두 번째는 타인을 위한 배려를 꼽고 싶군요. 예를 들어, 해설을 들으시는 분들 중 다리가 불편한 분이 계시면 그 분의 보폭에 맞춰야 하죠. 그 분만 따로 떼어 놓고 천천히 오시라는 둥 이러면 안 되는 거죠. 마지막으로 해설을 듣는 순간 한 팀,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책임감을 발휘해야 해요. 특히 유적지와 같은 야외에서 해설을 할 때면 더더욱 그렇죠. 소매치기와 같은 위협에서 자신의 관객들을 지켜낼 수 있는 책임감이 필요해요.
△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작품 해설 하는 멘토
마지막으로 도슨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내에서는 여전히 도슨트를 무급(봉사)으로 부려먹는 문화단체가 많은 것이 현실이에요. 적은 돈이라도 반드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한 기관에 소속되기 보다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게 낫습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다양하고 많은 전시를 통해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인상파 전시를 맡다가 앤디워홀 전시를 맡게 되면 공부를 많이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폭을 넓히면 문화예술설명가로 길이 넓어질 수 있어요. 마침 도슨트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으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김경민
미디어콘텐츠디렉터
담당부서:인터뷰
취재:김경민
INTERVIEW
김경민
dangmenso3@mailinfo.sara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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