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PD,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업무 강도가 굉장하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프로듀서의 꿈을 갖게 되셨는지 멘토님의 시작이 궁금해요.
어렸을 적을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후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었어요. 대학교 1학년 이후로는 방송을 만든다는 것 이외에는 고민하지 않았구요. (웃음) 영상을 좋아했으니까, 진로선택에 있어서 크게 고민을 하지 않았죠.
대학을 졸업한 뒤에 군대에 갔는데, 제대하고 보니 주위 친구들은 소위 말하는 스펙을 쌓고, 취업 스터디를 하더군요. 하고 싶은 일을 두고 막연한 공부를 시작하기 엄두가 안 났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이 일이니까, 잘 익히고 배우면 해낼 수 있겠다는 조금은 치기 어린 생각을 가졌죠. (웃음)
치기 어린 생각일까요?
아래에서부터 열심히 해서 위로 올라가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치기 어리죠. 굉장히 고생스러운 길이라는 건 사실이에요. 야구처럼 차츰차츰 메이저리그로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엄청난 피라미드와 경쟁구조에서 메이저리그에 입성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시작을 높은 곳에서 해서 소위 말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나라 현실에선 더 일반적인 목표죠. 그 리그로 들어가는 경쟁 자체가 굉장히 치열해요. 저는 실무와 관계 없는 시간을 더 쌓기보단 ‘실무에 뛰어들자’라는 생각을 먼저 한 거죠.
실무로 뛰어 들기 위한 과정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SBS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그 당시엔 최신 기술이었던 비선형 편집을 배웠어요. 그래서 사회에 나올 때는 편집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었죠. 제가 배웠던 편집 기술이 당시에는 흔하지 않아서 운이 참 좋게도 사회 나온 지 얼마 안되어 편집감독을 맡았어요. 거창한 건 아니지만 조그만 편집실의 책임자로 활동하다 보니 많은 선배들을 만나게 되고, 그 인연이 이어져 연출이나 편집을 맡게 되는 행운이 따랐죠.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선택하신 건 아니군요?
처음엔 영상을 만드는 게 좋았고 뮤직비디오 제작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세상일이라는 게…(웃음) 편집하는 일이 재미있어서 계속 하다 보니 다큐멘터리를 접하게 된 거죠. 처음 연출을 맡았던 제작사가 도전지구탐험대라는 프로그램을 만들던 프로덕션이었어요. 거기서 선배들에게 배우고 성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외 프로그램 쪽에 특화된 연출가가 되었죠.
혹시 다른 분야의 프로듀서로 탁재형 PD님을 뵐 수도 있을까요? (웃음)
하하, 한 장르를 익히는 것만 평생이 걸려요. 배울게 정말 많고 계속 나아가는 선배들을 보면 익힐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죠. 섣불리 다른 장르로 전향을 생각하는 건 건방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개인의 능력이 된다면 시도하지 못할 이유도 없겠죠. 다큐멘터리에서는 재연과 같은 드라마적 요소가 필요한 경우가 있어요. 그 안에서는 드라마라는 장르를 맛 볼 수 있으니 확언하기는 어려워요. (웃음)
PD의 입장에서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도대체 니가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 이거죠.
PD가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맡은 프로그램이 전체적으로 다 흔들려요. 명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지하고 갔어도 현장에 도착해보면 상황에 따라 그렇게 안 되는 경우가 많죠. 현장 상황을 보고 계획을 변경
하던지 대안을 찾아서 나머지 스텝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말해줘야 하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요.
다큐멘터리 PD를 이야기꾼에 비유하셨으니 그 부분이 가장 힘들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을 잃었을 때.” 그럴 땐 어떻게 하셨어요?
생각하죠. (웃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손으로 써보는 건 달라요, 수첩 같은 데 스토리를 계속 쓰다 보면 그 다음 화면이 그려지는 경우가 있어요. 정신차리고 이야기의 맥을 다시 잡아내야 해요. 이 상황에서 제일 재미있는 소재가 뭔지, 이 재료로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전달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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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된 상황에 빨리 대안을 찾아내야 하니 융통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겠군요.
그렇죠. 약간은 능글맞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갑작스러운 상황에 있어서 너무 당황하지 않고 넘어가는 성격, 본래 이런 성격이라면 일하기 편하긴 한데 선천적이지 않은 이상 경험을 통해 융통성이 길러지기도 하죠. ‘이땐 이렇게 풀어나갔지’ 하는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면 당황하지 않고 넘어가고 실수를 방지할 수도 있구요. PD가 되려면 눈치가 빨라야 해요. 계속 눈치를 보며 상황에 따라 빨리 해결책을 내놓고 최악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염두 해 둬야 하죠. 작품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PD는 2주에 한번 집에 갔다가 짐을 싸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다고 들었어요.
어떤 프로그램을 맡느냐에 따라 다른 부분이에요. 세계테마기행을 맡았을 당시를 떠올리면 두 달 단위로 일정이 돌아가요. 2주를 해외에 나가서 촬영을 하고 2주 동안 편집을 하죠. 편집은 물론 PD의 숙련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맘에 드는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편집이 길어지는 경우가 있죠. 이런 경우 집에 ‘퐁당퐁당’ 들어가게 돼요. (웃음) 그래서 대부분의 프로덕션에는 잘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죠. 그렇게 편집이 끝나면 일주일 정도 종합편집이라고 해서 자막, 색 보정, 나레이션, 음악 등의 작업을 하게 되죠. 그렇게 일주일정도 방송을 지켜보고 남은 2주 동안 다음 방송을 계획해서 촬영을 나가게 돼요.
스케줄이 굉장히 바쁘게 돌아가네요.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어서 그런지 여자 다큐멘터리 PD는 잘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많아요. 엄청 많죠. (웃음) 여자 PD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오히려 이 업계에서는 남자 조연출을 구하기가 더 힘들죠. 사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자체가 굉장히 여성에게 친화적인 장르예요. 다큐멘터리는 이야기죠. 모든 프로듀서, 디렉터는 이야기꾼이에요.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풀어나갈 줄 아는가에 있어서는 여성의 센스가 더 빛나기도 하죠.
여성 PD가 늘어나고 있다는 건 사실 생각하지 못했네요. (웃음) 사람에 따라 다른 부분이긴 하지만 한 작품을 맡는 PD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처음엔 조연출로 시작을 하게 돼요. 만일 제작사가 5분, 10분짜리 방송을 하고 있으면 상대적으로 자기 프로그램을 맡을 기회가 빨리 다가올 수 있겠죠. 1년 반 만에 다큐멘터리를 맡는 친구도 있구요.
저희 같은 경우는(김진혁공작소) 짧으면 30분 보통 1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요. 조연출들이 입봉하는데 평균 5년의 시간은 걸린 것 같아요. 물론 입봉까지 1년 반과 5년의 차이는 크겠지만 긴 호흡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았다는 경험을 봤을 땐 조연출로의 5년이 그렇게 아까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서 5분짜리 호흡을 이을 수 있느냐, 1시간의 호흡을 이을 수 있느냐는 분명 차이가 있죠.
그러니 조연출로 활동하는 시간이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서 정말 중요해요.
*김진혁공작소 : 1998년 설립 이래 75개 국가에서 현지의 문화와 자연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글로벌 컨텐츠 전문 프로덕션.
사실 PD가 되고 싶다고 하면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스펙이나 학벌이 아닐까 싶어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 학벌이 높으면 당연히 좋아요. 그런데 학벌이 있으면 좋다는 것이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건 또 아니죠. 자신이 학벌과 스펙 부분에서 조금 자신이 없다면 그 대신에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입증 할 줄 알아야 해요. 한번의 기회가 왔을 때 자기 자신을 뇌리에 각인이 될 정도로 입증할 능력이 필요하죠.
학벌에 대한 질문이 많은 이유가 ‘인맥’의 중요성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인맥, 전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죠. 인맥이라는 건, 이 일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요. PD로 활동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잘 이어간다면 인맥 부분은 커버가 가능할 수 있죠.
‘학벌이 높으면 인맥 부분에서 좋다’라는 말들은 이런 뜻이에요.
방송을 만들고 그 방송의 질로 자신을 입증하는 건 가능해요. 그런데 점점 더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만들게 될수록 취재처와 그 대상을 섭외하는 게 중요해지죠. 이 때 학교와 인맥에서 오는 편의가 어느 정도 있다는 점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구태여 공부를 못 할 필요는 없잖아요. (웃음)
언론사에 들어가는 과정에 ‘고시’라는 단어가 붙어요. ‘언론고시’, 정말 어렵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정말 어렵죠.
언론고시에 통과해서 방송사에 들어가게 되면 더 나은 환경에서 방송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사실이에요. 당연한 거죠. 하지만 언론고시가 어렵다고 외주 제작사를 선택하는 건 잘못된 선택이에요. 외주로 나올 거면 공중파 방송사로 들어가는 사람들 이상의 능력과 자기확신이 없으면 오지 말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소모되고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
PD가 되고 싶다면 현실적으로 뭘 먼저 시작해야 할지 궁금해요.
일단 자기가 진짜 이 일이 하고 싶은지, 내가 자질이 있는지를 철저하게 돌아봐야 해요. 가장 현실적인 시작이죠.
아주 철저하게 돌아보세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갖고 있는 자질에 대해서.
PD가 될만한 자질이라면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죠.
사람들을 대하는 게 즐겁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이게 기본 능력입니다.
우리 간혹 보면 실제로 경험한 것 보다 더 재미있게 말해주는 친구들 있잖아요, (웃음) 이러면 기본적 능력은 된다고 봐요. 이 속에 스토리텔링 능력과 언어능력이 함께하는 거니까요. 재미있는 이야기꾼이 되기 위해서는 타고난 언어능력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소재도 많아야 하고 한가지 현상을 여러 가지 틀로 재구성해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해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소재를 물고 늘어지는 집요함도 필수 조건이죠.
‘이 일을 하고 싶은지 철저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방송 일을 한다고 하면 다들 멋있게 보고 선망하는 막연한 동경을 갖는 경우가 많아요. 한 때 저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났다’는 치기 어린 자기 확신을 갖기도 했어요. (웃음) 그런데 이런 마음이 없었다면 초기에 힘들었던 시기를 못 견뎠을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자기 확신을 불어넣을 줄 알거나 만들어 낼 줄 알아야겠죠.
자기 능력은 어느 정도고 부족한 역량은 노력으로 해결 가능 한지, 그렇다면 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자기 자신이 파악할 줄 알아야 해요. 그리고…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드려야 하죠. 끊임없이.
△ 탁재형PD의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
다큐멘터리 PD가 되는 것. 어렵네요 멘토님.(웃음)
알렉산더 폰 홈볼트라는 19세기 독일 탐험가가 있어요. 5년에 걸쳐 남미를 탐험했죠. 찰스 다윈도 이 사람에게 영감을 받아 자신의 탐험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알렉산더 폰 훔볼트라는 사람, 5년 동안 남미를 돌면서 처음부터 완벽하게 탐험 계획을 세웠을까요?
처음엔 남미에, 그 다음엔 태평양을 들러 필리핀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남미에 가보니 너무 재밌고 즐거워서 5년을 남미 탐험을 하게 됐다고 해요. ‘너무 재미있고 관심 있어서 그때 그때 계획을 수정’ 한 거죠. ‘난 과학사에 공헌할 탐험을 하겠다’ 라는 큰 줄기를 정하고 도전했을 뿐이에요. 닥쳐오는 상황은 임기응변과 선택을 통해 대처를 했구요.
이 이야기는 모든 어려운 일을 앞둔 사람들에게 적용이 돼요.
진로를 고민하며 생각만 하는 친구들에게는 큰 줄기를 잡았으면 액션을 취하라고 하고 싶어요. 길을 가다가 수정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요. 당연하니까요.
다큐멘터리 PD의 길을 걸으시는 이유, 고된 스케줄을 잊을 만큼의 이 직업만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대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죠.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죠.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감동이나 영향을 준다면, 그 보람은 더 커져요.
처음 조연출 시기도 재미에 취해서 5~6년을 지내다 보면 제일 힘든 시기는 지나고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단계까진 갈 수 있어요. 그 재미에 취하면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 수 있죠.
화려한 면만 보고 PD를 꿈꾸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달리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프로페셔널한 마라토너로 데뷔를 한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달리기를 예전처럼 즐길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끊임없이 자신의 페이스와 경쟁자의 속도, Finish라인의 지점을 생각하게 될 테니까요. TV가 좋은 분들은 그냥 TV로 다큐멘터리를 만나세요. 하지만, 그 뒷면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으면 냉철한 분석과 자기확신 그 두 가지를 제대로 갖춘 뒤 단단히 마음을 먹고 도전하세요.
정글이죠 방송계는. 외주 제작사와 공중파 방송사에서 소위 말하는 ‘슈퍼 갑’ 이란 방송사예요.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갑의 리그에 들어가시는 것이 아니라 을의 세계에 오실 거라면 정말 ‘갑’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실력을 갖출 맘의 각오를 하고 오세요.
각오가 된 사람이라면 시작해도 될까요?
처음 시작 5, 6년 동안 옆에서 누가 얼마를 벌었고 누가 뭐가 됐고 누가 어떤 기회를 잡았고… 이런 말에 귀를 막고 달려갈 자신이 있다면,
네. 시작하세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마케팅팀 리포터 이지은
담당부서:인터뷰
취재:이지은
INTERVIEW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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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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