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이자, 컨벤션 기획사로 15년간 학회에 몸담고 있는 조미숙이라고 합니다.
학회업무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보건학을 전공했고, 졸업 직후에는 연구실에서 동물해부실험 및 바이러스 관련한 실험을 했었는데 저와 맞지 않아서 그만두려던 찰나, 마침 학교선배가 학회업무를 하다가 결혼하고 미국으로 가게 되어서 제게 후임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제가 한 번 해보겠다고 한 거죠. 이름만 들어봤을 때 ‘학회’라고 하니까 굉장히 멋있게 느껴지는 거에요.(웃음)
그렇게 처음에는 ‘우연’으로 시작했던 일이,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제 스스로 체계적인 방법을 세우며 해나갔어요. 총무, 회계, 책임자, 이벤트 기획, 인쇄, 편집 등 모든 부분을 경험해보면서, 멀티플레이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구요. 간혹 어떤 분들은 이렇게 모든 부분을 다 하는 것에 대해 힘들어서 불만을 가지기도 하는데, 저는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언제 어디서라도 어떤 업무가 주어지든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이젠 시간이 지나며 경력까지 쌓였기 때문에, 어느 분야를 가던지 전문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뿌듯해요.
학회라는 곳은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겠어요.
학회라는 곳은 교수님, 연구원, 박사님, 대학원생들처럼 연구나 학문을 다루는 사람들이 같은 분야의 학문과 기술의 진보발전을 도모하여 국가의 관련 기술, 산업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그와 관련된 사업이나 학술대회등의 제반사업을 하는 비영리 공익법인이에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학회는 그 종류와 분야가 정말 다양해요. 보통 사람들이 궁금한 점이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학회에 자문을 구하기도 하지요. 학회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연구성과나 논문, 발표 등의 회의를 하는데 이것을 작게는 미팅이라고 부르고, 규모가 조금 커지면 심포지엄이나 워크숍, 학술대회라고 불러요. 가장 큰 규모의 회의는 춘/추계로 나누어지는 정기적인 국내학술대회와 국제학술대회로 이루어져요.
아, 서울에 있는 코엑스라던지, 부산 벡스코와 같은 곳들에서 진행하는 거군요!
네, 맞아요. 처음에는 대학교나 연구소등의 대강당에서 회의를 하기도 하는데 참석인원이 점점 늘어나면서 ‘컨벤션 센터’라는 곳이 생겼어요. 코엑스, 대전컨벤션센터, 대구엑스포, 부산벡스코, 광주컨벤션센터, 창원컨벤션센터, 제주컨벤션센터 등 우리나라 전국 주요도시에 많은 회의장소가 생겨나서 지역별로 돌아다니며 유치할 수 있게 되었죠.
‘컨벤션 기획사’라는 단어자체가 생소한데,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알려주시겠어요?
컨벤션 기획사라는 직업이 우리나라에 정착 된지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컨벤션 기획사는 컨퍼런스, 회의, 미팅 등을 기획하고 준비하며 실행하고 마무리까지 하는 사람을 말해요. 국내에서는 흔히 학술대회 및 학술발표회라고 부르고, 국제 컨퍼런스는 G20과 같이 세계여러나라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대회나 세계대회를 일컬어요. 국제 컨퍼런스는 각 나라의 기업들과 세계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데, 현재 MICE산업이라고 해서 Meeting, Incentives, Convention, Exhibition 이렇게 네 가지 산업이 각광받고 있는데, 이 모든 산업의 실제 업무자를 ‘컨벤션 기획사’라고 불러요.
그렇다면 국내/국제대회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이 되며, 컨벤션 기획사는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맨 처음으로는 장소를 섭외하고 답사하는 것부터 시작해요. 그 다음으로는 이러한 대회가 개최되니, 참가하고 싶은 사람들은 논문과 초록 등의 서류를 제출하라고 공고를 알리며 참가자를 모집하는 거에요. 제출한 서류는 학회의 교수님들 심사를 거쳐서 추려지고, 접수가 마감되죠. 그 다음 등록비를 받아요. 등록비는 고용된 인력들 일당, 식사나 다과, 발표장 대여, 빔 프로젝터 및 전자기기 대여, 각종 현수막과 배너/명찰 등 대회에 필요한 모든 예산에 쓰여요. 예산안을 정말 신중하게 잘 짜서 모자라지 않도록, 적당한 금액 내에서 조율이 되어야 하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전등록을 받습니다. 국제대회는 사전등록을 2개월 전에 마감해서 그 사람들을 위한 안내문, 책자, 명찰 등을 만들어요. 사전등록과 논문초록 접수를 마감하면 분야별로 논문의 양이 나누어지는데, 그 양에 따라 룸의 사이즈를 정하죠. 발표자와 참석자, 현장등록 인원을 고려해 룸의 크기를 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건 경험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또한 현장등록도 무시할 수 없어요.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감을 잡고 식수예약도 하는데, 가장 비슷한 근사값을 잡아야 해요. 일단 인원수를 예상해서 예약을 잡고 나면, 그만큼의 금액을 지불해야 되거든요. 근데 이게 정말 까다로운 문제인 게, 대회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의 입맛이 다 다르고, 사람들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머무를 것인지 예약 일정도 다 다르며, 원하는 방 크기나 종류도 다 다르다 보니까 외국인들을 상대하려면 어느 정도의 영어실력이 있어야 해요.
대회가 진행될 때도 단체복에 무전기를 꽂고 행사가 잘 진행되는지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펴야 되요. 그래서 간혹 가다가 호텔 직원인줄 알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웃음) 대회가 다 끝나고 사후보고서와 정산완료까지 한 뒤, 학회 교수님들에게 브리핑하는 것까지가 컨벤션 기획사의 주 업무라고 할 수 있어요.
준비기간은 정말 오래 걸리는 한편, 실제로 현장에서 그렇게 눈에 띄는 역할은 아닌 것 같아요.
영화배우 황정민씨가 정말 유명한 수상소감을 발표했었잖아요. 뒤에서 고생한 스태프들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자신은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고요. 저희 컨벤션 기획사들 역시 밥상을 잘 차려놓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인거죠. 약간 다른 점은 PD부터 시작해서 프로듀서, 스태프, 말단 막내의 역할까지 모든 역할을 모두 경험한다는 점이라고 할까요.(웃음)
위에서 말했듯이 모두 STAFF 복장을 갖춰입고, 무전기를 들고 쉴새 없이 돌아다니며 체크하고,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까 남자분들의 경우는 보디가드로 오해하는 분들도 많아요.
컨벤션 기획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자격증이 처음 생긴 해는 2003년도구요, 저는 2000년도부터 학회업무를 시작했었어요. 컨벤션 기획사 자격증은 1급과 2급으로 나눠져 있는데, 1급은 2급을 따고 나서 실무경력이 7년 이상 되어야 기회가 주어져요. 1급은 아직 국가에서 시행이 안됐는데, 나중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필기시험을 합격한 자에 한해서 PPT 작성 및 영문서신 과목으로 총 6시간의 실기시험까지 마친 뒤 합격여부가 발표돼요.
저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6개월 동안 직장을 다니며 짬을 내서, 주말마다 8시간씩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같이 수업을 듣던 사람들이 대부분 갓 졸업한 학생들이나 졸업예정중인 학생이었는데, 그 사이에서 꿋꿋하게 다녔었죠.
멘토님께서는 실무부터 먼저 시작하셔서 굳이 자격증이 필요 없었을 것 같은데, 취득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학회에 있는 교수님이 외국에 나가보니, 이런 분야를 전문적으로 준비하는 전문가들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우리나라에서는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라고 불리고 있었는데, 국제적인 자격증은 따로 있더라구요. 특히 서양은 아고라가 발달하면서 회의문화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보니, 이런 부분이 많이 발달되어 있었어요. 우리나라 역시 컨벤션 기획을 하려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생겨나면서, 전문가의 양성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영어 잘하고, 대학만 나온 사람들이 기획사를 하니까 학회에서 교수님들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하신 말을 듣고, 그때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업무가 힘들긴 하지만, 적성에 잘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 같아요. 자격증 공부를 하게 되면서 회의를 기획 할 때 실수했거나 잘못된 것들이 눈에 보여서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하나의 대회를 준비하는데 필요한 준비기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요?
국제대회는 2년 넘게 준비하구요, 국내대회는 4~5개월 정도의 준비기간이 걸려요. 그렇기 때문에 이 업무는 갑작스럽게 어떤 사람이 투입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기획단계에 사전답사부터 한 사람이 마지막까지 마무리 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도중에 ‘너무 힘든데 그만할까’ 하는 생각을 더더욱 못 가졌던 거 같아요. 대부분 컨벤션 기획사들이 ‘이번 학회나 심포지엄이 끝나면 좀 쉴까’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는데, 쉬기 전에 이미 다른 행사의 답사가 들어가 있어요.(웃음) 이것도 저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내가 없으면 이 회의는 진행이 안돼’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아지거든요.
한 번 학술대회를 개최하면 어떤 단계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장소와 날짜를 선정하고 조직위원회를 구성해서 조직위원장 선출한 뒤, 각각에 필요한 위원회가구성되요. 모든 회의들은 춘계/추계로 나눠져서 4월이나 10월에 가장 많이 잡히구요, 정기적인 회의들을 피해서 국제회의는 6월이나 겨울 같은 비수기에 많이 해요. 이렇게 날짜가 정해지면 장소를 섭외하는데, 이때 반대로 센터에서 제의가 오기도 해요. 하나의 국제 혹은 국내 대회가 열리면 그 지역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있거든요. 그래서 지원금을 지원하거나 홍보를 대신 해주겠다거나 하는 제의도 같이 와요. 외국분들도 관광할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하시고, 국내분들도 도심에 있는 회의장보다는 관광도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을 더 선호하지요. 좋은 장소에서 하게 되면,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거든요.
반대로 지원금을 받으면서 하는 경우도 있군요! 그럼 오히려 지원금이 총 예산보다 더 클 경우도 있겠네요?
네, 그렇죠. 오히려 장소 대여료 보다 지원금 액수가 더 큰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봤을 때, 사람들을 많이 참석하게 하는 장소가 좋은지, 행사비가 적은 것이 좋은지, 교통이 편리한 것이 좋은지에 대한 것들을 검토해 본 후, 장소선정을 하고, 답사를 시작해요. 답사장소에 가서 이런 주제를 가지고 대회를 진행할 건데, 어떤 룸에서 진행할 것인지. 예상 인원수에 맞춘 적당한 크기의 룸이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점심장소가 있는지. 이런 인원을 케어 할 수 있는 객실이나 출장뷔페가 있는지에 대한 많은 고려사항을 가지고 장소를 최종적으로 선정하죠. 물론 이런 모든 부분을 만족시키는 곳은 있지만, 예산에 맞는 금액에 가능한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이렇게 많은 업무를 혼자 다 하시면 굉장히 힘드실 것 같아요. 더군다나 꼼꼼히 체크도 해야 하는데, 멘토님만의 비법이 있으신가요?
처음 컨벤션 기획사 업무를 듣는 분들은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하느냐고 놀라시는데, 저만의 체크리스트가 따로 있어요. 저도 원래는 덜렁대는 성격이었는데, 업무를 하면서 꼼꼼하게 변했어요. 처음에는 무언가 하나씩 빠트려서, 찾다가 안 나오면 현지에서 구입하기도 했는데 해가 거듭될 수록 한번 실수했던 것은 제일 먼저 꼭 챙기거든요. 그러다 보니 체크리스트가 계속 늘어나고, 점점 빠트리는 것이나 실수하는 것이 줄어들어요.
회의장안의 인테리어는 매 대회마다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시나요?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의 동선부터 고려해서 인테리어를 구성해요. 처음 낯선 곳에 온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찾아올까요? 플랜카드, 안내판, 지시판 등 하나하나를 잘 보고 찾아올 수 있도록 배치하죠. 좀 큰 규모의 대회는 각 기둥마다 스탠드 배너와 안내판을 통일된 디자인으로 만들어서 헷갈림이 없도록 해요.
대회에 참가하신 모든 분들이 영어권 국가의 참석자가 아니기 때문에 영어를 능숙하게 잘 하진 않아요. 그래서 아무리 영어로 표기를 해놔도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 색으로 표시를 했더니 굉장히 반응이 좋았던 적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움직일 동선, 룸, 안내 데스크, 식당 등을 모두 같은 색으로 통일해서 표시해놓았더니, 나중에 ‘한국은 안내가 너무 잘되어 있는 친절한 나라’라고 소개를 해주셨대요. 그리고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발달되어 있어서 스마트 기기에 맞춘 프로그램도 제작하고 있어요. 대신 그만큼 저희들의 업무가 많아지기도 하죠.(웃음)
국제대회에 참가해 처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을 좌우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업무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이미지가 외국인들한테 각인된다고 생각하니 애국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더 잘해드리려고 하고, 친절하게 웃으면서 대하려고 노력하죠.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을 보면 ‘나한테 말 걸지마’ 라고 이마에 써놓은 채, 표정도 잔뜩 굳히고 있잖아요.
컨벤션 기획사는 내가 우리나라의 주인인 것처럼, 친절한 서비스 마인드가 필요한 직업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다시 한번 한국에 왔을 때, 나를 기억해주고 아는 척 해주면 고마운 일인거죠.
△ 대회장에서 멘토님의 모습(좌), 대회가 끝나고 스태프들과 단체사진을 찍은 모습(우)
업무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몇 년 전 방영했던 ‘시크릿 가든’이라는 드라마에서 누군가 길라임역의 하지원씨에게 스턴트맨을 왜 하냐고 물어봤을 때 하지원씨가 이렇게 대답을 했었어요. ‘나는 이 일을 할 때 심장이 뛴다.’ 스턴트맨은 자기 이름이나 얼굴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역할인데, 그걸 함으로써 뿌듯함을 느낀다고 하는 것을 보고 저도 그때 많이 공감했었거든요. 저도 친구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었어요. ‘나이가 들어도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
심포지엄이나 학술대회를 할 때, 긴장감은 정말 최고지만 그만큼의 기쁨과 심장이 뛰는 듯한 즐거움이 있기에 계속 하는 것 같아요.
행사가 끝나고 나서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 교수님들은 준비를 한 STAFF들을 앞으로 불러서 참석자들에게 행사를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분들이라면서 소개시켜줘요. 그때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나오죠. 몇 백, 몇 천명이 자신을 위해 박수를 보내주는 이런 경험을 아무 곳에서나 해볼 수는 없는 거잖아요. 어떤 인센티브보다 더 큰, 그 동안 힘들었던 모든 것들과 어깨의 짐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에요.
정말 가슴 벅찬 순간이겠네요. 반대로 업무를 하면서 힘든 점은 언제인가요?
사실, 업무를 하면 할수록 힘들긴 해요. 특히 미혼여성들은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지방행사로 한번에 7박8일씩 하는 출장도 자주 다녀야 되니까 많은 어려움이 생기죠. 그리고 대부분 교수님이나 스태프들은 남자라서 홍일점일 때가 많아요. 숙소도 혼자 쓰고, 혼자 자는 경우가 많죠.
그래도 일이 재미있으니까 이런 힘든 점들도 점점 더 즐기게 되는 것 같아요.
멘토님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 있나요?
제가 학회에 들어간 지 얼마안 된 사회초년생이었을 때, 정말 무서운 교수님을 만났었어요. 그 후로 한 십년이 지난 후, 한번은 제주도에서 학회가 열렸을 때 그분을 직접 운전해서 숙소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그분이 처음으로 저한테 운전을 잘한다는 칭찬을 해주시는 거에요. 업무적으로는 칭찬을 하나도 안 해주시던 분이 그렇게 해주시니까 저한테는 ‘업무적인 것도 잘 하는데 다른 것까지 잘하네’ 이렇게 들려서, 하다 보면 어려운 분한테도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순간이 오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리고 저희 엄마가 더 뿌듯해하시는 점도 있어요. 15년 동안 같은 일을 쭉 해왔고, 교수님들과 농담도 주고받는걸 보면 평소에는 덜렁거리고 못미더운 딸인데, 업무적으로는 너무 똑부러지게 잘하니까 자랑스러워 하세요. ‘세상에서 누구를 가장 기쁘게 해줬을 때가 좋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엄마인 것 같아요.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사람이 인정을 해줬을 때 행복하죠.
멘토님의 에너지와 열정은 어떤 사람에게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열정만큼은 따라가기 어렵겠다’ 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요. 처음에는 하이힐을 신고 행사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굉장한 체력이 소모됐었죠. 무슨 일만 생기면 다 저를 찾으니까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고, 행사기간 동안 제 핸드폰은 쉴 틈이 없어요.
하지만 이것도 굉장히 뿌듯하고 재미있어요. 행사장을 가면 여기저기서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사실 굉장히 작은 부탁인데도 그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저 밖에 없고, 모든 것이 낯설다 보니까 제가 해결해주면 굉장히 고마워하세요. 그래서 사람들간의 네트워크가 형성이 되면서 인맥도 굉장히 넓어졌죠. 제가 남들보다 IQ나 EQ가 높지는 않아요. 그런데 NQ는 누구보다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멘토님께서 이렇게 열정적으로 10년 넘게 업무를 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일을 좋아한다는 걸 잘 몰랐는데, 어떤 스태프가 저한테 ‘과장님처럼 일을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라고 말해주는 거에요. 그때 ‘아, 그 동안 나는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즐기면서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게 즐기며 하다 보니까 더 잘하고 싶어지고, 제 성격상 잘한다고 칭찬 해주면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이런 것들이 한 분야를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이 정말 즐거워서 즐기지 않았다면 못하셨을 것 같아요.
매너리즘과 비슷한 위기상황이 한번씩 왔어요. 저의 경우는 20대 때 체력이 좋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과 임신, 출산, 자녀의 입학 등이 이어지다 보니 계속해서 주변의 압박이 들어왔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오히려 주저앉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더 열심히 일을 했죠. 주변에서 ‘워킹맘이라 힘드시겠어요.’ 라고 하면 저는 ‘슈퍼 울트라 워킹맘이에요.’ 라고 말해요.(웃음) 그만큼 출장도 잦고 체력적인 부분도 힘든데다가 아이와 일, 두 가지 모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보니 워커홀릭이라고 해야 할까요?(웃음) 저는 그런 사람인 것 같네요.
작은 체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열정을 보면 정말 ‘슈퍼 울트라 워킹맘’이 맞으신 것 같네요^^ 10년 넘게 업무를 하시면서 웬만한 학술지식들은 다 익히셨을 것 같아요.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저도 10년 넘는 기간 동안 일을 하다 보니 자주 쓰이는 전문용어 라던지 분야별 세부 항목, 오타, 각 학술대회에 맞는 디자인 등 각양각색의 분야를 두루 갖춰서 알고 있어요.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름이나 얼굴을 외우는 능력이 생겨서, 처음 보는 분인데도 신청서를 보고 미리 외워서 ‘어느 대학교의 어느 교수님’ 이라고 아는 척을 하면, 상대방도 어떻게 알았냐 하시며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좋아하세요. 그러다 보면 하나를 물어봐도 저한테 물어봐 주시고, 해외에 여행을 나가면 가끔 우연히 만나기도 해요. 그럴 때 굉장히 반갑게 맞아주시며, 저도 모르게 인맥이 뻗어나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자녀들도 멘토님의 이런 모습을 자랑스러워 할 것 같아요^^
아직 어려서 그런지 잘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웃음) 그런데 아이들도 제 생활패턴에 적응이 되어있어요.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하루만 어디 갔다 온다고 해도 울고불고 난리가 나잖아요. 근데 우리 아이들은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저와 같이 출장을 다녔고, 항상 엄마의 부재가 익숙하다 보니까, 오히려 ‘엄마 돈 많이 벌어와~’ 라고 말하면서 배웅해줘요.(웃음) 그런 모습을 보니, 아이들도 엄마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구나 하고 알아봐주는 것 같아서 고맙고 미안해요. 그래서 저도 아이들과 있을 때는 엄마로써 잘해주려고 최대한 노력하죠.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우잖아요. 그래서 저도 더욱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컨벤션 기획사’가 되기 위한 필요한 스펙이나 마음가짐이 있나요?
보통 영문학과나 컴퓨터관련 학과를 나온 분들이 많이 준비하는데, 단순히 영어나 컴퓨터만 잘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걸 다 기획한다고 했잖아요. 영어만 잘하면 통역사 이상은 될 수 없거든요. 대회를 유치해오려면 프레젠테이션 발표부터 시작해서, 가장 작은 예산으로 수익도 극대화할 수 있어야 되고, 완벽하게 실수 없이 마무리할 수 있는 전문성까지 주최측에서는 요구해요. 특히나 국제대회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이미지도 함께 비춰지는 것이기 때문에 실수라는 것은 용납이 될 수 없어요.
‘컨벤션 기획사’가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 하셨나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했던 노력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어느 분야를 가더라도 아마추어보다는 프로를 원할 것 같아요. 프로들은 책임감이 강하잖아요.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본인 스스로가 마무리를 지어야 마음이 편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도 중요해요. 교수님들이 정말 꼼꼼하셔서, 본인은 완벽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빠트린 것이나 실수한 것이 있으면 정말 큰 일이기도 하고 굉장히 혼도 나거든요. 그래서 지적을 안받기 위해서라도 더 꼼꼼하게 체크하고, 이것은 왜 이렇게 해놨는지 하나하나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교수님이나 박사님이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갑자기 불이 나간다거나 마이크가 꺼진다던지, 안전상의 문제가 생겨서 참석자가 다친다던지 하면 큰일이니까, 개회식부터 폐회식까지 굉장히 많은 긴장을 해요.
멘토님께서 생각하시는 ‘컨벤션 기획사’의 매력이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7~8년을 잘 못 넘기고 그만둬요. 영어도 잘하고 스펙도 좋은 사람들이 좋은 회사를 갈 수 있는데, 처음에는 박봉에다가 일이 정말 힘들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사람들은 업무가 매력적이라서 버티는 것 같아요. 많은 외국인들과 메일도 주고받고, 행사장 안에서 가슴 벅찬 떨림도 느껴볼 수 있고, 자신의 책임하에 진두 지휘해서 모든걸 총 책임 하는 매력이 있죠. 요즘 많은 분들이 야근이나 주말출근에 굉장히 민감한데, 그런 면에 있어서는 좀 무딘 사람이 해야 되는 것 같아요. 행사준비가 시작되면 야근, 주말출근, 출장을 정말 밥 먹듯이 하거든요.
어떤 사람이 ‘컨벤션 기획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분야에 대한 열정이 있는 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야근과 출장 등이 정말 많잖아요. 이것도 어찌 보면 3D직업처럼 힘든 업무거든요. 생긴지 오래되지도 않고, 신생 직업이다 보니까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구요. 명칭은 ‘국제회의전문가’라고 하는데, 자격증 이름은 컨벤션 기획사라고 해서 많은 분들이 잘 몰라요. 남들의 이목보다 자신 안에 숨어있는 열정을 꺼내고 싶고,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해야 맞는 직업인 것 같네요.
이제 막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나 콘텐츠가 있으신가요?
김미경씨의 ‘언니의 독설’이라는 책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인생을 더 살아본 언니로써 직업을 더 가져보고,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일을 하며 느낄 수 있는 그때의 감정을 독설처럼 콕 짚어주면서 얘기해주는 책이에요. ‘일을 쉬고 아이나 볼까? 하는 그런 시기에, 이 고비를 넘기면 인정도 받을 수 있고, 연봉도 높아지고, 자기 스스로 프로페셔널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멘토님이 이루고싶은 꿈이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계속해서 전진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에는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 앞에서 제가 걸어온 길에 대해 강연을 해보고 싶어요. 이 업무를 하면서 느낀 성취감이나 이 업무를 해보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경험을 담아서 현업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자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또 그런 꿈을 갖도록 심어주고 싶기도 하구요. 저 역시 그런 좋은 강연들을 듣고 꿈을 가졌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기 위해서 조금 늦게 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일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지금까지 일해오면서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에 대해 늘 겸손하고 배우는 자세로 또 공부할 생각입니다.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 기획팀 리포터 김예진
담당부서:인터뷰
취재: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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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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