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 출산드라의 은혜를 매주 받던 시청자로서 이렇게 작가님을 뵙게 되니 신기해요. (웃음) 작가님의 소개 부탁드릴게요.
하하, 반가워요. 방송작가 김은미입니다. 개그콘서트, 얼짱시대, 기막힌 외출 등 다수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활동했고 지금은 뮤지컬, 연극 대본을 집필하고 강연 활동도 함께 하고 있어요. (웃음)
어떻게 방송작가의 길을 걷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방송작가 일은 95년도에 코미디 세상만사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어요. 원래 대학에서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를 맡을 정도로 방송 일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그런데 아나운서를 하기엔 성대가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은데 어떡하지..’ 생각을 했죠.
소속된 동아리가 교내 방송국이다 보니 방학 때 선배들을 통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게 됐는데 그 아르바이트가 막내 방송작가 자리였어요. 스크립터 같은 아르바이트로 프로그램을 몇 개씩 하게 됐고, 옆 팀 PD가 부탁하고 또 그 옆 팀 PD와 일을 하면서 점차 발을 넓혀갔죠.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예전에 함께 일한 PD에게 연락이 왔어요.
“ 너 작가 할래?” 라고요.
다양한 방송 장르 중 코미디/예능 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음, 방송작가로의 시작을 코미 디프로그램에서 했어요. 처음에 '코미디나 예능 장르가 나에게 맞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그래서 PD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어요.
“내가 웃긴가? 내가 웃긴 대본을, 아이템을 잘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때 저에게 조언을 해준 사람이 이런 말을 했죠.
“네가 코미디를 알면,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 노하우를 알면, 어느 분야를 가던 새로운 길을 걸을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라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시작을 했고, 지금은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해요.
사람을 웃음 짓게 하는 노하우가 방송작가의 삶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군요?
그렇죠. 지금도 사람을 즐겁게 하는 글이 제일 힘들어요. 슬프고 일상을 다루는 글보다 더 힘들죠. 막내작가 시절에는 많이 혼나기도 했어요. (안 웃기다고.. 하하하.) 당대 최고 잘나가는 개그맨들보다 웃긴 대본을 써야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경험이 시트콤, 예능, 코미디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뮤지컬 대본 작성과 강연 활동, 책 집필까지 가능하게 해줬죠.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유명하긴 하지만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 막연해요. 어떻게 업무가 진행되나요?
예능이나 코미디 작가는 회의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출근, 퇴근시간이 거의 회의 시간에 맞춰져 있어요. 회의 때 나온 아이디어나 프로그램 방향을 작가들이 다듬고 정리하는 거죠.
예능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은 글발도 중요하지만, 아이템 승부예요.
늘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나와야 해요.
하지만 방송 작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전반적인 일을 하기 때문에
출연자 섭외부터, 장소 섭외, 아이템 구성, 대본, 자막 작업까지 다양한 일들을 소화해야 해요.
△'개그콘서트' 작가를 하셨던 멘토님.
방송작가 초년생 때는 회의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히 클 것 같아요. 아이디어가 안 나올 때는 스트레스가 대단하겠는걸요?
그렇죠. 특히 아이템이 잘 안 나올 때는 정말 스트레스예요. 일반 회사원들이 퇴근 후 직장과 업무에서 분리가 된다면 방송작가는 하루 종일 아이템 싸움이 끊이질 않죠. 집에 가서도 내일 회의를 위한 것들로 머릿속이 분주하죠. (웃음)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강단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카리스마나 강단이 중요하지만 일단 실력이 있어야 살아남아요. 프리랜서니까요. 회의 시간에 입 꾹 닫고 앉아있는 작가와 누가 일하고 싶을까요? 본인이 두각을 나타내면 나중에 누군가에게 꼭 전화가 와요. “ 너 나랑 같이 일해볼래?” 이렇게요.
작가들이 한 프로그램 당 보통 5명 이상씩 구성이 돼요. 메인작가를 필두로 각 연차 별 막내까지.. 여기서 일 잘하는 친구들은 바로 눈에 띄죠. 일 잘하는 후배들을 보면 항상 여기저기서 콜이 와서 바쁘게 일해요. (웃음)
안정적이지는 않지만 절대 지루하진 않은 직업이군요. (웃음)
하하, 그렇죠. 재미있어요. 일주일 단위로 프로그램 만들고.. 굉장히 역동적인 직업이죠. 밤늦게 까지 집에 못 들어갈 때도 있지만 서로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어떻게 재미있게 만들까, 이야기하는 그 회의 시간이 저는 정말 즐거웠어요.
아, 물론
시청률이 안 나오면 조금 슬프긴 하지만 (웃음)
방송작가에 대한 편견일까요, 한가지 질문드리고 싶은 점이 방송작가는 '박봉'이라는 말이 있어요.
급여 관련한 부분은 작가 역량에 따른 능력제예요. 하지만 처음 막내작가들로 봤을 땐 맞아요. 박봉이죠.
요즘엔 특히나 방송작가를 꿈꾸는 친구들이 아주 많아졌어요. ‘시켜만 주세요’라는 마음가짐의 친구들이 많죠. 그래서 솔직히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재미있는 상황 뒤에는 그걸 만들기 위해서 매일 밤을 지새는 스텝들이 있거든요. 그 일하는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은 편 인건 사실이니까요. 사실 억대 작가들이 많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정말 서바이벌이에요. 막내작가에서부터 능력을 인정받고 높은 보수를 받을 때까지는 정말 많이 참고 기다려야 해요.
사실 예능이나 코미디 프로그램의 작가를 할 때면 ‘내가 지금 기쁘지 않은 데 즐거운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라는 괴리감도 들 것 같아요.
맞아요. 개그맨들의 비화죠.
그래서 전 그들에게 고마워요.
대학생 시절 부친상을 당하고 개인적으로 좀 힘들었어요. 그 일 말고도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개그맨들을 만나고 회의를 해야 했죠. 그 과정들이 힘들었던 나를 즐겁게 만들었어요. 아이템 회의 때문에 억지로라도 즐겁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다 보니 사람 자체가 긍정적으로 변한 거죠. 기쁘고 즐거운 기분에 점점 적응이 되었달까요?
연기자들도 감정 몰입을 하지만 작가도 그래요. 스토리 흐름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몰입을 해야 하죠. 밝은 이야기로 끝나면 작가도 밝고. 어둡게 이야기가 끝나면 작가도 우울해져요. 그래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해요.
방송작가로 활동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중요할 것 같아요.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궁금해요.
나 잘났다고 하면 절대 안 돼요. 설령 잘났을지언정.(웃음)
물론 누군가를 만났을 때 주눅들 필요는 없어요. 당당하되 사람을 대할 때는 먼저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준 후 내 의견을 말하는 것. 간단해 보여도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멘토님이 출간하신 책.
작가님의 책 이야기도 궁금해요. ‘결국 엄마가 되고 말았다’라는 책을 내셨어요. 책 제목을 보고 느낀 게 그만큼 가정을 꾸리기 힘든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이었죠.
힘들어요. (웃음)
제 주변 작가는 대부분 아직도 싱글이죠. 주변에 아기도 낳고 가정생활을 하는 작가는 너무나 극소수예요. 프로그램을 할 때는 밤 11시가 넘어도 아이템이 나오지 않으면 집에 가지 못해요. 이런 경우 연애할 시간이 없죠. (연애를 어떻게 해요.. 저는 회의가 끝나지 않아 소개팅을 몇 번이나 취소했던지… (웃음) )
커리어 우먼의 비애군요. (웃음)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한가지 더 질문하자면, 어쨌든 작가이다 보니 국문학이나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는 게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문예 창작이나 방송연예, 국문학,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친구들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전공이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회계학을 전공한 작가도 있으니까요.
방송작가는 예능뿐만 아니라 드라마, 교양, 라디오, 다큐 등 여러 분야가 있어요. 어느 장르로 가느냐에 따라 다시 배우면서 일을 하게 되죠.
전공사항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도 방송아카데미는 수료하는 게 좋겠죠?
하하.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았던 이야기네요.
방송작가 과정을 공부하는 아카데미는 많아요. 그 역시 전공처럼 꼭 이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후배들을 보면 또 아카데미를 안 나온 친구들은 거의 없더라고요. 사실 방송작가 분야와 너무 동떨어진 공부를 했던 후배들은 방송에 대한 어느 정도의 감을 익혀두고 실전에 투입되는 게 도움이 되요. 한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아카데미는 인맥 때문에 가는 이유가 크죠.
△ '얼짱시대'의 촬영 현장에 함께하신 멘토님.
방송작가로서의 인맥 말씀하시는 거군요?
맞아요. 저 같은 경우 아무래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방송계 사람을 많이 접하다 보니 인맥적인 면에서는 커버가 가능했어요.
방송작가는 공개채용의 개념보다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공고를 작가협회나 아카데미 쪽으로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공석이 생겼으니 실무에 투입될 수 있는 친구 어디 없을까~?’ 하는 거죠. 그럴 때 아카데미를 다니는 게 참 좋아요. 아무래도 강사님들은 현업에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소개를 받기도 하고, 함께 수업하며 알게 된 선배나 동기들의 정보를 전해 듣기도 하고요. 프리랜서인 작가의 특성상 인맥으로 일자리 구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작가님의 첫 방송작가 데뷔가 24살이셨을 때라고 들었어요. 막내작가 평균 연령이 어떻게 되나요?
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나이가 더 어려지죠. 22살부터 26까지가 평균적인 것 같아요.
늦은 나이에 방송작가를 시작하긴 어렵겠어요.
프로그램은 연차 별로 메인작가부터 막내작가까지 구성되어있어요. 사실 메인작가와는 나이 차이가 꽤 나니까 문제 될 게 없지만, 막내작가가 나이가 많으면 그 위의 선배들이 함께 일하는 데에 부담을 느끼게 돼요. 간혹 20대 후반에 꿈을 이루겠다고 시작하는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노력에 비해 좋은 자리를 못 가서 안타까운 경우도 있죠.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작가는 오롯이 능력제예요. 잘하는 후배들은 나이가 한 두 살 많아도 서로 데려가려고 한다는 점이 더 중요해요.
방송작가 후배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음.. 첫 번째로 사교적이어야 해요.
제가 막내작가 때 코미디나 예능 장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한 선배님이 이렇게 말했죠.
“너는 사교성이 참 좋다. PD와 출연자 사이에서 완충 역할도 참 잘하고..”
글은 잘 쓰는데 내성적인 사람은 방송작가를 하기 어려워요. 외향적인 캐릭터, 사교적인 성격으로 팀 안에서 잘 융화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죠. 막내작가를 뽑을 때 선배들과 PD들이 함께 인터뷰를 해요. 그때 우리는 그 사람의 아이디어보다 인성을 더 중요하게 보죠. 인성은 가르칠 수 없거든요.
두 번째로 당당해야 하죠.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화려한 방송인이라고 해도 그 뒷면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다양한 스텝이 있어요. 작가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의 일원이지 누군가의 하수인이나 주종 관계에 놓은 사람이 아니에요. 가끔 제작자가 갑이고 작가가 을인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각자가 전문인이고 맡은 일이 다를 뿐이에요.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말씀해주신 부분은.. 현실적인 조언이네요. 그런데 방송작가라고 하면 준 방송인이랄까요…? 화려한 면도 많이 눈에 띄어요.
맞아요. 그 외면에 반해서 방송작가에 입문하면 조금 안 좋은 케이스가 되죠. 간혹 작가들이나 다른 스텝들이 연예인과 같이 일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반은 연예인인 듯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작가는 작가예요. 매일 보는 연예인의 화려한 일상에 휩쓸리게 되면 더 이상 작가가 아닌 게 되죠.
작가님의 현실적인 조언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네요. (웃음)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는.. 방송작가 선배님으로서의 따끔한 충고 한마디가 더 듣고 싶어요.
에이.. 충고는 무슨.. (웃음) 나도 그렇게 시작을 했는걸요.
이 인터뷰를 보고 있을 방송작가가 되고 싶은 누군가처럼 저도 처음엔 서툴렀어요.
처음부터 작가를 꿈꾸던 제가 아니었기에 한때는 화려한 외면에 눈길이 가기도 했죠.
그런데 지금 와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외면이 아닌 내공을 쌓으셨으면 하는 점이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급해요. 내성이 부족한 느낌?
힘들면 금방 그만두고 포기하는 게 빈번한 세상이 됐죠. 시작은 다 같이 해도 끈기를 가지고
버티는 깡이 있어야 해요.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면 당장 어떤 걸 시작해야 할까요?
작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이라면 세상 경험을 많이 하세요.
방송작가는 너무나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세상 모든 곳에서 아이디어가 나오죠.
경험하는 시간을 아까워 말아요.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건, 외국으로 호화스러운 여행을 다녀왔건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훌륭한 아이디어로 재탄생해요.
방송작가를 꿈꾸신다면, 경험하세요.
Side Story 리포터 후기
콘텐츠마케팅팀 리포터 이지은
담당부서:인터뷰
취재:이지은
INTERVIEW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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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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